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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식도 금기도 없는 한 남자의 진솔한 기록, <몸의 일기>

by beato1000 2025. 11. 9.

몸의 일기 표지
<몸의 일기>

 

 

 

<몸의 일기>란 어떤 책인가요?

다니엘 페나크(Daniel Pennac)의 <몸의 일기(Journal d’un corps)>는 인간의 육체를 주인공으로 삼은 독창적인 소설입니다. 이 작품은 한 남자가 12살부터 87세에 이르기까지 평생 자신의 ‘몸’을 관찰하고 기록한 일기 형식의 이야기로, 인간의 존재를 영혼이 아닌 ‘육체’의 시선으로 탐구합니다. 소설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해가는 신체의 감각, 성장과 노화, 쾌락과 병, 욕망과 두려움을 세밀하게 묘사하며, ‘살아 있음’의 의미를 철학적으로 사유합니다. <몸의 일기>는 단순한 육체 묘사를 넘어, 인간이 자기 자신과 화해하고 수용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문학적 명상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몸의 변화를 쉽게 받아들기도 하고, 부정하기도 합니다. 특히 나이가 들어가며 신체의 감각이나 노화에 대한 변화를 쉽게 인정하지 않죠.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나이가 들었지만,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더 젊을 때의 나로 스스로를 정의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인식과 실제의 차이는 나 자신과 사회의 갈등을 유발하기도 합니다. <몸의 일기>는 이러한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합니다. 

 

한 인간의 몸에 대한 진솔한 기록을 담은 소설

<몸의 일기>는 제목 그대로 한 인간의 몸에 관한 기록입니다. 주인공은 이름 없는 한 남성으로, 그는 열두 살 무렵부터 자신이 느끼는 신체의 변화를 일기 형식으로 써 내려가기 시작합니다. 그가 기록하는 것은 감정도 사상도 아니라, 몸의 움직임과 반응, 감각입니다.
그는 성장기의 불안정한 체온, 사춘기 때 처음 경험하는 성적 욕망, 젊은 날의 체력과 활력, 그리고 나이 들며 찾아오는 피로와 질병까지 모두 ‘몸의 언어’로 기록합니다. 이야기의 형식은 단편적이고 일기적이지만, 그 속에는 한 인간의 생애 전반이 녹아 있습니다.
그의 기록은 일상에서 시작됩니다. “오늘은 왼쪽 무릎이 평소보다 소리를 낸다.”, “심장이 빠르게 뛰는데, 이유를 모르겠다.”와 같은 짧은 문장들이 반복되며, 독자는 점차 이 ‘몸의 기록자’와 함께 살아갑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몸은 변하고, 그 변화는 곧 인생의 은유가 됩니다. 그는 “몸이 곧 나의 역사가 된다”라고 말합니다.
이 소설은 인간의 육체가 단순히 생물학적 존재가 아니라, 삶의 모든 순간을 기억하고 증언하는 ‘주체’임을 보여줍니다. 주인공은 몸의 감각을 통해 사랑을 느끼고, 두려움을 경험하며, 늙음을 받아들입니다. 그는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몸의 반응을 더욱 세밀히 기록합니다. 예컨대,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의 근육 경직, 나이가 들며 줄어드는 호흡의 길이, 심장의 미묘한 떨림 등이 세밀하게 묘사됩니다.
그의 기록은 점점 철학적인 성찰로 확장됩니다. 그는 “몸이 나를 이끌고 여기까지 왔다. 나는 그저 따라왔을 뿐이다.”라고 적습니다. 삶의 주도권이 정신이 아니라 몸에 있었음을 깨닫는 순간입니다. 결국 그는 자신의 몸을 하나의 존재로 인정하며, ‘죽음’마저도 몸의 마지막 기능으로 받아들입니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는 노년의 육체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제는 몸이 나보다 더 지혜롭다”고 말하며, 육체의 퇴화 속에서도 평화를 느낍니다. <몸의 일기>는 인간의 생애를 영혼이 아닌 신체의 시선에서 바라본 독특한 자서전이자, 인간 존재의 가장 구체적인 기록입니다.

 

 

인간의 삶을 신체의 기록으로 재해석한 실험적인 작품

<몸의 일기>는 전통적인 서사 구조를 벗어나, 인간의 삶을 신체의 기록으로 재해석한 실험적인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다니엘 페나크는 이 소설을 통해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이기 전에, 감각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문학적으로 증명합니다.
비평가들은 <몸의 일기>를 ‘육체의 철학서’라고 부릅니다. 그 이유는 이 작품이 단순히 신체의 변화를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몸을 통해 인간의 존재론을 탐구하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은 나이가 들며 몸이 자신과 분리된 타자로 느껴질 때조차, 그것을 부정하지 않고 관찰합니다. 이는 현대 사회가 추구하는 젊음과 완벽한 몸의 이미지를 해체하는 저항적 행위이기도 합니다.
페나크는 이 작품에서 독자에게 “당신의 몸은 당신의 이야기다”라는 메시지를 던집니다. 인간은 정신이나 기억만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웃고, 아파하고, 두려워하고, 사랑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몸이 있기 때문입니다. 작가는 이러한 관점에서 ‘몸의 존엄’을 복원하고, 인간의 생을 있는 그대로 긍정합니다.
또한 <몸의 일기>는 문체적으로도 매우 독특합니다. 주인공은 감정이나 수사를 최대한 배제하고, 관찰자의 시선으로 자신의 신체를 기술합니다. 그러나 그 건조한 문장들 사이로 깊은 인간미가 배어납니다. 이는 페나크 특유의 유머와 따뜻함 덕분입니다. 그는 “몸이 나를 속일 때조차, 나는 그를 미워할 수 없었다”라고 적으며, 인간의 불완전함을 사랑의 언어로 표현합니다.
문학사적으로 이 작품은 ‘존재의 감각화’라는 새로운 시도를 보여줍니다. 데카르트적 이원론(정신과 육체의 분리)을 거부하고, 몸과 마음이 하나로 연결된 전체적 존재로 인간을 재구성합니다. 이는 사르트르나 메를로퐁티가 제시한 ‘몸의 철학’을 소설의 언어로 구현한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작품은 나이 듦과 죽음을 두려움이 아닌 이해의 대상으로 전환합니다. 주인공은 죽음을 “몸의 마지막 기록”이라 부르며, 그것마저 삶의 일부로 받아들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현대인이 잃어버린 ‘삶의 순환적 인식’을 되살립니다.
결국 <몸의 일기>는 신체와 존재, 감각과 기억, 삶과 죽음의 관계를 문학적으로 통합한 작품입니다. 다니엘 페나크는 몸을 통해 인간을 해석하고, 인간을 통해 몸의 의미를 다시 묻습니다. 그 결과 이 작품은 철학과 문학의 경계를 허물며, ‘살아 있다는 것’의 본질을 가장 구체적이고도 아름답게 증언하는 소설로 남습니다.

 


독특한 개성을 가진 프랑스 작가, 다니엘 페나크

다니엘 페나크(Daniel Pennac, 1944~ )은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교육자, 그리고 현대 프랑스 문단의 독특한 개성을 지닌 작가로 평가받습니다. 그는 모로코 카사블랑카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여러 나라에서 보냈습니다. 이러한 국제적 경험은 그의 작품에 다양한 문화적 감수성을 불어넣었습니다.

페나크는 처음부터 문학가로 성공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젊은 시절 그는 교사로 일하며 학생들에게 언어의 아름다움을 가르쳤고, 동시에 ‘읽기의 자유’에 대해 꾸준히 주장했습니다. 그의 대표적 에세이 <소설처럼(Comme un roman)>은 “독자는 책을 읽을 의무가 아니라, 즐길 권리가 있다”는 명언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페나크크의 소설 세계는 ‘인간에 대한 애정’과 ‘일상적 유머’로 가득합니다. 그는 범죄, 교육, 사회 문제, 철학적 사유 등을 다루면서도 늘 인간을 중심에 두었습니다. 대표작으로는 <말로센 시리즈(La saga Malaussène)>가 있으며, 이는 프랑스 현대문학의 가장 독창적인 유머 소설로 꼽힙니다.
페나크의 문학적 특징은 일상 속에서 철학적 의미를 발견하는 능력입니다. 그는 복잡한 개념이나 거창한 사건이 아닌, 인간의 평범한 삶과 몸, 관계 속에서 진리를 포착합니다. <몸의 일기> 역시 그런 시선에서 탄생했습니다. 그는 정신 중심의 철학이 아닌, 감각 중심의 철학을 문학으로 표현하며, 독자에게 “생각하기 전에 느껴라”라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그는 인터뷰에서 “나는 인간을 추상적 존재로 그리지 않는다. 인간은 땀을 흘리고, 배고프고, 잠들고, 늙는 존재다. 나는 그 모든 과정을 사랑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태도는 그의 작품 전반에 흐르는 인간주의적 따뜻함을 잘 보여줍니다.
다니엘 페나크는 여전히 활발히 창작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프랑스 아카데미 프랑세즈(Académie Française)의 회원으로서 문학과 언어의 가치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는 독서와 상상력, 그리고 인간의 감각을 통해 삶의 의미를 다시 쓰는 작가로, 현대 프랑스 문학의 인간적 지성을 대표합니다.

<몸의 일기>는 인간의 몸을 중심으로 한 생애 기록이자, 철학적 사색이 담긴 문학적 실험입니다. 다니엘 페나크는 이 작품을 통해 ‘살아 있음’의 의미를 신체의 언어로 다시 써냈습니다. 몸은 단순한 그릇이 아니라, 삶의 모든 순간을 기억하는 존재입니다. 이 소설은 우리가 자신의 몸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일, 곧 자신을 온전히 수용하는 일의 중요성을 일깨워줍니다. <몸의 일기>는 인간 존재의 가장 근원적인 기록으로, 지금 이 순간 살아 있는 모든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