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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하고 서정적인 범죄 서사를 보여준 작품, <백야행>

by beato1000 2025. 10. 22.

백야행 표지
<백야행>

 

 

인간 내면의 어둠과 죄의식, 사랑의 왜곡된 형태를 탐구한 소설

히가시노 게이고(東野圭吾)의 장편소설 <백야행(白夜行)>은 일본 추리문학사에서 가장 강렬하고 서정적인 범죄 서사로 손꼽히는 작품입니다. 1999년에 발표된 이 소설은 20년에 걸친 세월 동안 두 남녀의 인생이 교차하는 서늘한 비극을 그리며, 인간 내면의 어둠과 죄의식, 그리고 사랑의 왜곡된 형태를 집요하게 탐구합니다.
이야기는 1973년 오사카의 한 폐건물에서 시작됩니다. 그곳에서 한 중년 남성이 살해된 채 발견되지만, 범인은 끝내 잡히지 않습니다. 사건의 중심에는 두 명의 어린아이, 류지(야스오)와 유키호가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피해자의 아들과 살해된 남자의 딸로 보이지만, 사실 두 아이는 그날 이후 운명을 뒤바꾸게 됩니다.
류지는 가난한 가정에서 자라나 사회의 그늘 속을 떠돌며 범죄와 생존을 오가게 되고, 유키호는 그와는 반대로 겉보기에는 완벽한 여성이 되어 성공적인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인생은 서로에게 보이지 않는 실로 연결되어 있으며, 그 관계는 마치 ‘백야’처럼 빛은 있지만 따뜻함이 없는 세계를 상징합니다.
소설은 형식 면에서도 독특합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주인공들의 내면을 직접 보여주지 않고, 주변 인물들의 시선과 사건의 기록을 통해 간접적으로 묘사합니다. 즉, 두 주인공은 이야기의 중심이면서 동시에 그림자처럼 존재합니다. 이 기법은 독자로 하여금 그들의 진짜 감정과 의도를 스스로 추론하게 만들며, 독특한 긴장감을 유지합니다.
시간은 흐르고, 류지와 유키호가 어른이 된 후에도 이상한 사건들이 연달아 발생합니다. 관련된 인물들이 차례로 죽거나 사라지면서, 경찰은 점차 두 사람의 연결고리를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명확한 증거는 없고, 모든 것은 완벽하게 감춰집니다. 결국 독자는 마지막 장에 다다라서야 그들의 관계가 어떤 방식으로 죄와 구속, 그리고 사랑으로 얽혀 있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백야행>의 서사는 단순한 범죄 미스터리를 넘어, 인간의 도덕성과 감정의 복잡한 층위를 드러냅니다. 특히 ‘백야’라는 제목은 상징적으로 사용되어, 밤이지만 어두워지지 않는 세계, 즉 빛은 있으나 따뜻하지 않은 관계를 나타냅니다. 이는 류지와 유키호의 관계를 압축적으로 표현하는 메타포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 작품을 통해 "사랑은 구원일 수도, 파멸일 수도 있다"는 테마를 던집니다. 두 사람은 서로를 구원하려 했으나, 결국 서로를 어둠 속에 가둔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이 아이러니한 구조가 <백야행>을 단순한 추리소설이 아니라, 인간 심리의 심연을 그린 문학 작품으로 만들어줍니다.

 


인간 존재의 근원적 외로움과 구원의 가능성을 묻는 작품

<백야행>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소설로, 작가의 서사적 역량이 정점에 달한 작품으로 인정받습니다. 발표 이후 일본에서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대표작’으로 불리며, 드라마와 영화로도 여러 차례 각색되었습니다. 비평가들은 이 작품을 “추리소설의 외피를 쓴 현대 사회의 심리극”으로 평가합니다.
가장 큰 특징은 범인이 처음부터 등장하지만, 범행 동기가 끝까지 밝혀지지 않는 구성입니다. 일반적인 추리소설이 ‘누가 범인인가’를 추적한다면, <백야행>은 ‘왜 그런 일을 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파헤칩니다. 이 차이는 독자에게 더욱 깊은 감정적 충격을 줍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 작품에서 선악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듭니다. 류지와 유키호는 명백히 죄를 짓지만, 동시에 그들의 행동에는 사회적 환경과 어린 시절의 상처가 작용합니다. 독자는 그들의 죄를 비난하기보다, 이해하고자 하는 모순된 감정에 빠지게 됩니다. 작가는 바로 그 지점에서 인간의 복잡한 본성을 날카롭게 포착합니다.
문체적으로 <백야행>은 차분하면서도 밀도 있는 묘사로 독자를 서서히 압박합니다. 직접적인 감정 표현을 자제하고, 사실의 나열 속에서 인물의 심리를 드러내는 방식은 일본 미스터리 특유의 냉정한 긴장감을 유지합니다. 또한 20년에 걸친 시간의 흐름을 치밀하게 구성해, 하나의 사회 다큐멘터리처럼 현실적인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이 작품은 또한 ‘보이지 않는 공모’라는 주제 의식을 담고 있습니다. 류지와 유키호는 직접 만나지 않지만, 서로의 존재를 느끼며 살아갑니다. 이 관계는 일종의 운명적 연결로 묘사되며, 인간이 완전히 홀로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그들의 사랑은 일반적인 감정이 아니라, 죄의 공모를 통해 이어진 관계입니다. 그렇기에 이 사랑은 뜨겁지 않고, 백야의 빛처럼 차갑고 잔혹합니다.
비평가들은 이 작품이 ‘히가시노 게이고 문학의 전환점’이라고 평가합니다. 이전의 추리소설이 논리적 퍼즐에 집중했다면, <백야행>은 인간의 내면적 동기를 탐구하는 심리문학으로 발전했습니다. 작가는 범죄를 사회적 구조의 산물로 보고, 개인의 도덕이 어떻게 붕괴되는지를 집요하게 보여줍니다.
또한 <백야행>은 ‘사랑의 이중성’을 주제로 한 문학적 완성도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사랑은 빛을 향한 열망이지만, 동시에 타인을 파괴할 수도 있는 위험한 감정임을 이 작품은 보여줍니다. 이 점에서 <백야행>은 단순한 범죄소설을 넘어, 인간 존재의 근원적 외로움과 구원의 가능성을 묻는 철학적 텍스트로 자리 잡았습니다.

 


일본을 대표하는 추리소설가, 히가시노 게이고

히가시노 게이고(東野圭吾, 1958~ )는 일본을 대표하는 추리소설가이자 현대문학의 거장으로 평가받습니다. 그는 1985년 <방과 후>로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하며 데뷔했고, 이후 <비밀>, <용의자 X의 헌신>,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등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발표했습니다. 그의 작품은 철저한 논리와 인간 심리를 결합하여, 단순한 범죄소설을 넘어선 깊은 감정의 서사로 인정받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오사카 출신으로, 오사카 부립대학 전기공학과를 졸업한 공학도였습니다. 이러한 배경 덕분에 그의 소설에는 과학적 사고와 정밀한 구조가 자주 등장합니다. 그러나 그가 진정으로 관심을 둔 것은 인간의 심리와 윤리의 문제였습니다. 그는 “범죄는 인간의 마음속에서 시작된다”고 말하며, 사회적 시스템과 개인의 내면이 충돌하는 지점을 탁월하게 묘사합니다.
그의 작품 세계는 크게 두 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처럼 과학적 트릭을 중심으로 한 본격 미스터리이며, 다른 하나는 <백야행>과 같은 심리·서사 중심의 휴머니즘 미스터리입니다. 특히 후자는 인간의 어두운 감정과 사회적 고립을 치밀하게 파헤치며, 독자에게 윤리적 질문을 던집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상업성과 문학성을 동시에 확보한 작가로, 일본 문학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합니다. 그의 소설은 40여 개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 독자들에게 읽히고 있으며, 여러 작품이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되었습니다. <백야행>은 그중에서도 가장 문학적이고 비극적인 작품으로 평가받으며, 작가 자신도 “가장 쓰기 힘들었지만, 가장 마음에 남는 소설”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는 작품을 통해 인간의 선과 악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지 않습니다. 대신, “사람은 누구나 빛과 어둠을 동시에 품고 있다”는 신념을 일관되게 보여줍니다. 이러한 세계관은 <백야행>의 두 주인공 류지와 유키호를 통해 극단적으로 구현되었습니다.
오늘날 히가시노 게이고는 단순한 추리작가를 넘어, 인간 존재의 복잡성을 탐구하는 철학적 스토리텔러로 평가받습니다. 그의 소설은 독자에게 미스터리의 쾌감뿐 아니라, 삶의 도덕적 무게와 감정의 진실을 묻는 성찰의 기회를 제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