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세기 기술적 낙관주의와 인간 의지의 모험 정신을 생생하게 구현한 소설
어릴 때 읽은 소설 중 유독 가슴을 두근두근하게 만든 것들이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 모험소설을 읽으며 심장이 두근거릴 정도로 긴장을 했습니다. 미지의 세계에 들어선 주인공이 어떻게 난관을 헤쳐나갈지 너무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80일간의 세계일주>는 어릴 때 너무 재미있게 읽었던 소설입니다. 지금이야 전 세계를 여행하는 데 며칠 걸리지도 않지만, 이 소설이 발표되었던 19세기에는 지구 일주 여행에 80일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은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지금으로 따지자면 가까운 미래에 화성 여행을 한 달 안에 가능하다고 내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네요. 그래서 이 소설은 매우 낙관적인 소설입니다. 소설 곳곳에 인류의 진보에 대한 믿음이 녹아 있는 소설입니다.
<80일간의 세계일주>는 19세기 유럽 사회의 기술적 낙관주의와 인간 의지의 모험 정신을 가장 생생하게 구현한 소설로 평가받습니다. 작품은 런던의 신사 필리어스 포그(Phileas Fogg)가 주인공으로, 철저히 계산적인 시간 감각과 완벽한 생활 습관으로 살아가는 인물로 등장합니다. 어느 날 그는 리폼 클럽에서 “지구를 80일 만에 한 바퀴 돌 수 있다”라고 주장하며, 2만 파운드의 내기를 제안합니다. 당시 증기선과 철도는 발전했지만, 그럼에도 이 주장은 거의 불가능한 도전이었습니다. 그러나 포그는 망설임 없이 가정부 장 파스파르투(Passepartout)와 함께 즉시 출발합니다.
여정의 첫 경로는 런던에서 수에즈, 봄베이, 콜카타, 홍콩, 요코하마, 샌프란시스코, 뉴욕을 거쳐 다시 런던으로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각 도시에서 정확히 연결되는 기차와 선박 일정을 계산하며 이동하지만, 세계의 현실은 그의 계획처럼 완벽하게 흘러가지 않습니다. 인도에서는 한 종교 의식 때문에 희생될 위기에 처한 여성 아우다(Aouda)를 구하게 되고, 그녀는 이후 동행으로 합류합니다. 홍콩에서는 파스파르투가 우연히 경찰과 엮이면서 일정이 꼬이기도 하고, 미국 대륙 횡단 철도에서는 들소 떼와 인디언의 습격으로 열차가 멈추기도 합니다.
한편, 런던에서는 은행 강도가 발생하고, 포그가 범인으로 의심받습니다. 형사 픽스(Fix)는 포그를 집요하게 따라다니며 체포할 기회를 노립니다. 그러나 포그는 오직 일정에만 집중하며, 자신의 명예와 신념을 걸고 여정을 이어갑니다. 결국 그들은 수많은 난관을 헤치고 유럽으로 돌아오지만, 예상치 못한 시간 계산의 착오로 인해 포그는 실패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그는 날짜 변경선의 차이로 인해 하루를 벌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 결과 그는 정확히 80일 만에 세계일주를 완수하며 내기에 승리합니다.
이 결말은 단순히 여행의 성공이 아니라, 인간의 이성, 과학, 의지의 승리를 상징합니다. 쥘 베른은 포그의 여정을 통해 “세계는 넓지만, 인간의 신념은 그보다 더 넓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그리고 포그는 여행의 끝에서 아우다와 사랑에 빠지며, 차가운 계산의 인간에서 따뜻한 감정의 인간으로 변화합니다. 이때 베른은 과학기술의 진보가 인간성의 소멸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과 신뢰를 더욱 깊게 만든다는 낙관적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결국 <80일간의 세계일주>는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라, 시간과 인간의 신념에 대한 철학적 우화입니다. 베른은 기계 문명 속에서도 인간의 상상력과 용기가 살아 있음을 보여주며, 독자에게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인간 정신의 위대함”을 체험하게 합니다.
근대 모험소설의 정점을 이루는 작품
<80일간의 세계일주>는 출간 직후부터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작품으로, 쥘 베른의 대표작 중 하나이자 근대 모험소설의 정점을 이루는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이 소설은 단순히 흥미로운 모험담이 아니라, 19세기 산업혁명기의 세계관을 생생하게 반영한 문학적 기록이기도 합니다. 당시 증기선, 철도, 전신망의 발전은 인류에게 ‘세계는 연결되어 있다’는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었고, 베른은 이를 문학의 영역으로 끌어왔습니다.
이 작품의 매력은 ‘모험’ 그 자체의 재미와 함께, 정밀한 시간 계산의 서사 구조에 있습니다. 포그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철저히 합리적 판단으로 움직이지만, 여정이 길어질수록 그의 인간적인 면모가 드러납니다. 이는 인간이 기계적 시스템 속에서도 감정을 잃지 않는 존재임을 상징합니다.
또한 <80일간의 세계일주>는 ‘글로벌 시대’라는 개념을 문학적으로 최초로 제시한 작품 중 하나입니다. 각국의 문화, 인종, 제국주의적 시선이 교차하는 가운데, 베른은 당시 유럽인의 시각에서 세계를 재현합니다. 그러나 그가 보여주는 시선은 단순한 우월주의가 아니라, 다양한 문명과 인간의 차이를 이해하려는 호기심에 가깝습니다. 이는 오늘날의 독자에게도 유효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문학적으로 볼 때, 이 작품은 ‘정확한 리듬감’과 ‘과학적 사실의 서사화’가 탁월합니다. 베른은 과학기술의 세부 정보를 묘사하면서도 결코 서사를 지루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증기선의 속도, 철도의 운행 시간, 도시 간 거리 등 사실적 데이터를 활용해 서사적 긴장감을 높입니다. 이 점은 현대 SF소설의 서사적 기반이 되었습니다.
비평가들은 <80일간의 세계일주>를 “근대적 시간 감각을 문학화한 최초의 작품”으로 평가합니다. 포그의 여정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시간을 이기는 인간의 서사’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의 하루 차이는, 인간이 시간의 법칙을 넘어서는 순간을 상징합니다.
이 작품은 또한 베른 특유의 낙관적 휴머니즘을 드러냅니다. 그는 인간의 지성과 기술이 결코 파멸을 부르지 않는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포그가 세계일주를 완수할 수 있었던 이유는 기계의 힘만이 아니라, 인간의 용기와 신뢰 덕분이었습니다. 이러한 메시지는 오늘날에도 유효하며, 기술 중심의 시대에 인간 정신의 가치를 일깨워 줍니다.
결국 <80일간의 세계일주>는 ‘기술 문명과 인간성의 공존’을 노래하는 고전입니다. 지금 다시 읽어도 여전히 생동감 있고, 여전히 우리에게 모험의 설렘을 불러일으키는 불멸의 작품입니다.
근대 SF문학의 개척자, 쥘 베른
쥘 베른(Jules Verne, 1828~1905)은 프랑스 낭트에서 태어난 근대 SF문학의 개척자이자, “과학소설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입니다. 그는 단순히 공상적 이야기를 쓰는 작가가 아니라, 과학과 문학의 경계를 넘나든 선구적 사상가였습니다.
베른은 법학을 공부했으나, 일찍이 연극과 문학에 관심을 갖고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1863년 발표한 <지하로의 여행(Voyage au centre de la Terre)>과 <해저 2만리(Vingt mille lieues sous les mers)>, <지구에서 달까지(De la Terre à la Lune)> 등은 당시로서는 불가능한 과학적 상상력을 다루며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쥘 베른은 ‘미래의 과학’을 문학적으로 해석한 최초의 작가로, 잠수함, 우주선, 헬리콥터, 텔레비전 등 현대 기술을 예견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이 단순한 기술 예언서로 그치지 않는 이유는, 그 속에 인간과 사회, 윤리, 모험 정신이 함께 녹아 있기 때문입니다.
<80일간의 세계일주>는 그의 중기 대표작으로, 베른의 문학적 성숙기에서 탄생했습니다. 이 작품은 인류의 진보를 믿는 베른의 낙관주의적 세계관이 잘 드러난 예로, 그의 과학소설 중 가장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는 여행과 탐험을 인간 존재의 본질적 욕망으로 보았으며, 이를 통해 인간 정신의 자유와 성장 가능성을 탐구했습니다.
그는 또한 지리학과 과학의 대중화를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의 작품은 단순히 문학적 상상력이 아니라, 실제 과학지식과 지리적 사실을 기반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베른은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교육적 소설”의 개념을 창안하여, 문학을 통해 독자가 과학을 배우고 세계를 이해하도록 유도했습니다.
생애 후반에는 산업화의 그림자와 인간 소외의 문제에도 관심을 보였으며, 인간이 기술에 종속되는 위험을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과학은 인간의 적이 아니라 친구다”라는 믿음을 유지했습니다.
쥘 베른의 영향력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는 H.G. 웰스, 아이작 아시모프, 아서 C. 클라크 등 수많은 SF 거장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20세기 이후의 과학 발전과 우주 탐사 정신에도 깊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의 작품은 현재까지 100여 개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영화·연극·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형태로 재해석되고 있습니다. 베른은 단순히 ‘미래를 상상한 작가’가 아니라, 인류가 꿈꾸는 미래를 문학으로 설계한 철학자로 기억됩니다.
쥘 베른의 <80일간의 세계일주>는 인간의 도전 정신, 시간에 대한 집념, 그리고 기술문명 속에서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감정의 힘을 노래한 불멸의 고전입니다. 이 작품은 단순한 여행의 기록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위대함을 증명한 서사시이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세계를 향한 첫걸음”의 상징으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