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부코(Nabucco)’는 이탈리아의 오페라 작곡가 주세페 베르디(Giuseppe Verdi)의 초기 대표작으로, 1842년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서 초연된 후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된 계기가 된 작품입니다. 성경 속 바빌론 유수 이야기를 바탕으로 유대 민족의 고난과 해방, 그리고 권력자 나부코의 내면 변화까지 담아낸 이 작품은 정치적, 종교적 상징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으며, 베르디가 민족주의 작곡가로 부상하게 만든 전환점으로 평가받습니다. 특히 합창곡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Va, pensiero)”은 이탈리아 국민의 통일 열망과도 연결되며 대중적으로도 큰 반향을 일으킨 곡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나부코' 작품 배경
‘나부코’는 베르디의 작곡 인생에 있어 결정적인 전환점을 이룬 작품입니다. 그는 이 작품을 쓰기 전, 아내와 두 자녀를 모두 잃는 비극을 겪었으며, 음악 활동을 중단할 위기에 놓여 있었습니다. 이 시기 그에게 제공된 대본이 바로 ‘나부코’였고, 처음에는 이를 거절했으나 우연히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을 읽은 뒤 작곡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이 대본은 성경과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하지만, 19세기 당시의 이탈리아 상황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탈리아는 당시 오스트리아 제국의 지배 하에 있었으며, 민족 통일과 독립에 대한 열망이 강하게 고조되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유대 민족의 억압과 해방을 다룬 ‘나부코’는 이탈리아 청중에게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통로로 작용했습니다. 특히 “Va, pensiero”는 단순한 극중 합창곡을 넘어서, 억압받는 민족의 염원을 대변하는 상징으로 받아들여졌고, 이후에도 이 곡은 이탈리아 통일운동의 비공식적 국가처럼 불렸습니다.
‘나부코’는 베르디가 오페라에서 단지 멜로디를 제공하는 작곡가에서, 드라마적 구성과 정치적 함의를 동시에 고려하는 예술가로 도약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 작품 이후 그는 이탈리아 국민에게 ‘우리의 작곡가’라는 평가를 받게 됩니다. 작품 전반에 흐르는 종교적 경건함과 드라마적 긴장, 그리고 인물 간의 복잡한 감정구도는 이후 베르디 오페라 전통의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스토리
‘나부코’는 네 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성경과 역사적 기록을 바탕으로 바빌론 왕 나부코(네부카드네자르)와 유대 민족 간의 갈등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줄거리는 기원전 6세기경, 바빌론이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유대 민족을 포로로 잡아가는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1막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시작됩니다. 유대인들은 바빌론 군대의 침공 앞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으며, 제사장 자카리아는 민족의 해방을 위한 신의 계시를 믿고 있습니다. 그는 바빌론의 공주 페넬페를 인질로 삼아 협상의 카드로 사용하려 하나, 나부코의 양녀이자 야망 가득한 아비가일레의 배신으로 계획은 어그러집니다. 이 과정에서 유대 청년 이스마엘과 페넬페의 사랑 이야기가 등장하며, 정치적 긴장과 개인적 감정이 교차합니다.
2막에서는 나부코의 권력욕과 아비가일레의 계략이 중심을 이룹니다. 아비가일레는 자신이 왕의 친딸이 아님을 알게 되자 분노하며, 왕위를 찬탈하기 위해 움직입니다. 한편 나부코는 자신이 신보다 우월하다고 선언한 후 벼락을 맞고 미쳐버리는 장면이 연출되며, 그의 몰락이 시작됩니다.
3막은 아비가일레가 바빌론의 권력을 장악한 가운데, 유대인을 모두 처형하려는 계획을 세우는 장면으로 전개됩니다. 그러나 자카리아와 유대 민중은 신의 도움을 믿으며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습니다. 이때 가장 유명한 합창곡 “Va, pensiero”가 등장하며, 유대인의 슬픔과 해방에 대한 염원을 감동적으로 전달합니다.
4막에서는 정신을 되찾은 나부코가 신에게 진심으로 회개하고, 아비가일레의 독주와 죽음, 그리고 유대 민족의 해방이 이어집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나부코는 자신이 진정한 신의 존재를 깨달았음을 선언하며, 예루살렘 성전의 재건과 유대인의 귀환을 허락합니다. 작품은 개인의 교만과 몰락, 신의 용서, 민족의 해방이라는 복합적인 메시지를 감동적으로 풀어냅니다.
작품 평가
‘나부코’는 베르디의 초기작이지만, 그의 작품 중에서도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이탈리아 오페라사 전체에서도 상징적 의미를 지니는 작품입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단지 극적 재미나 멜로디의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예술이 민족의식과 어떻게 결합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 결정적인 예로 평가받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나부코’는 정치적 오페라이자 민중의 오페라로 간주됩니다.
음악적으로는 웅장한 합창과 극적인 선율 전개가 특징이며, 각 인물의 심리와 서사를 반영한 아리아 구성도 뛰어납니다. 아비가일레의 아리아는 고음역대의 극적인 기술을 요구하며, 감정의 분노와 복잡함을 효과적으로 전달합니다. 나부코의 장면들은 인물의 내적 변화, 특히 신을 대적했다가 회개하는 과정을 중심으로 음악적 깊이가 더해집니다. 자카리아의 아리아는 종교적 신념과 도덕적 중심을 상징하며, 테너 이스마엘과 페넬페의 듀엣은 개인적 사랑과 정치적 갈등의 균형을 보여주는 구성으로 평가받습니다.
무대 구성에서도 웅장한 성전, 바빌론 궁전, 사막 등 장대한 배경을 요구하며, 합창 인원이 많고 대형 장면이 반복되어 시각적으로도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베르디는 이 작품에서 대규모 합창을 단순한 배경이 아닌 서사적 주체로 활용함으로써, 이후 ‘아이다’나 ‘일 트로바토레’ 같은 작품에서도 이어질 오페라 스타일을 정립했습니다.
오늘날 ‘나부코’는 베르디의 위상을 알리는 작품으로, 특히 “Va, pensiero”는 공연 중 관객이 기립하거나 앙코르를 요청하는 전통이 있을 만큼 강한 상징성을 지닌 곡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단지 예술을 넘어 민족 감정과 연결된 오페라로,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강한 울림을 주는 작품으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