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의 회전(The Turn of the Screw)’은 영국 작곡가 벤저민 브리튼(Benjamin Britten)이 1954년에 작곡한 심리적 공포 오페라로, 미국 작가 헨리 제임스(Henry James)의 동명 중편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전통적인 유령 이야기 형식을 차용하고 있으나, 등장인물의 심리적 모호함과 감정의 이중성, 그리고 불확실한 진실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청중에게 해석의 여지를 넓게 남깁니다. 브리튼은 12개의 장면으로 구성된 이 실내 오페라를 통해, 미니멀한 음악적 구조 안에 강한 긴장감과 불안을 녹여냈으며, 단순한 오컬트 서사를 넘어서 인간 내면의 심연을 탐구하고자 하였습니다. ‘나사의 회전’은 공포, 죄의식, 억압된 욕망을 오페라 형식으로 풀어낸 대표적인 20세기 영국 오페라로, 오늘날까지도 해석과 연출에 따라 전혀 다른 색채를 띠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나사의 회전' 작품 배경
‘나사의 회전’은 1950년대 중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정신분석학과 심리학이 문화 예술 전반에 강한 영향을 미치던 시기에 등장한 작품입니다. 작곡가 브리튼은 이미 ‘피터 그라임스’, ‘빌리 버드’ 등의 작품을 통해 인간 내면의 고립과 죄의식, 사회적 억압을 주제로 깊이 있는 음악극을 구성해 온 바 있으며, ‘나사의 회전’에서는 이러한 주제를 더욱 내밀하고 상징적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원작 소설은 19세기 말 헨리 제임스가 발표한 고딕풍의 심리 소설로, 내레이션의 신뢰성, 유령의 실존 여부, 어린이의 무의식과 타락이라는 복합적 요소가 얽혀 있는 작품입니다. 브리튼은 이 작품의 독특한 모호성과 심리적 긴장에 매료되어 오페라 화하기로 결정하였고, 대본은 그의 오랜 협력자 마이펀터(J. Myfanwy Piper)가 맡았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원작에서 유령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또는 가정교사의 환상인지 끝까지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며, 브리튼 역시 이러한 모호함을 음악을 통해 유지하며 청중의 해석을 유도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나사의 회전’은 소규모 편성의 실내 오페라이며, 13명의 악기와 6명의 주요 성악 솔리스트가 중심이 되는 간결한 구성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제한된 자원 속에서도 브리튼은 섬세한 악기 배치와 불협화음을 활용하여 극도로 강한 불안과 긴장을 만들어냅니다. 또한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12음 테마는 각 장면마다 변주되며 이야기에 구조적 일관성과 심리적 깊이를 더합니다.
이 작품은 단지 고전 유령 이야기를 무대화한 것이 아니라, 관객의 심리적 반응과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한 실험적이고 내성적인 오페라로 기획되었으며, 브리튼은 이를 통해 오페라 장르에 내면의 심리극이라는 새로운 문법을 제시하였습니다.
스토리
‘나사의 회전’은 한 젊은 여성 가정교사가 두 아이의 교육을 위해 외딴 시골 저택에 도착하면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이야기는 “프롤로그”로 시작되며, 이야기꾼이 무대에 나와 과거에 있었던 불가사의한 사건을 소개합니다. 이 장치는 극 전체를 하나의 회상 혹은 이야기로 만들어, 현실과 허구, 사실과 환상의 경계를 흐리게 합니다.
가정교사는 고아가 된 남매 마일스와 플로라를 돌보기 위해 블라이 저택에 오게 됩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천진난만하고 저택도 평화로워 보이지만, 곧 알 수 없는 불안한 분위기가 그녀를 감쌉니다. 아이들은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듯하고, 저택에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 반복됩니다. 특히 마일스가 퇴학당한 이유에 대한 의문과, 플로라가 혼잣말을 하며 무언가를 응시하는 모습은 그녀를 혼란에 빠뜨립니다.
점차 그녀는 아이들을 과거 저택에서 근무했던 하녀 제슬(Miss Jessel)과 사무장 퀸트(Peter Quint)의 유령이 지배하고 있다고 확신하게 됩니다. 퀸트와 제슬은 이미 사망한 인물들이며, 생전 부적절한 관계와 아이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던 존재로 묘사됩니다. 가정교사는 그들의 유령이 아이들을 타락시키려 한다고 믿고,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그러나 그녀의 행동은 점점 강박적으로 변하고, 아이들에게 집착하는 듯한 모습으로 변해갑니다. 플로라는 그녀와 함께 있는 것을 거부하고, 마일스는 점차 내면의 혼란을 드러냅니다. 작품의 마지막에서 가정교사는 마일스에게 퀸트의 존재를 인정하라고 몰아세우고, 마일스는 갑작스레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 순간 퀸트의 실루엣이 등장하는 연출이 많지만, 유령이 실제로 존재했는지는 여전히 불확실하게 남습니다.
이야기는 해석에 따라 여러 층위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유령이 실제로 존재하는 공포 이야기로도 읽힐 수 있고, 가정교사의 억눌린 욕망과 죄의식, 심리적 불안정성에서 비롯된 환상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관객은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면서도 끊임없이 의심하게 되며, 이중적 해석과 정서적 긴장이 극의 전개 내내 유지됩니다. 브리튼은 이러한 서사를 통해, 우리가 보는 세계의 진실이 항상 모호하고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음악과 극을 통해 전달하고 있습니다.
연출 의도
‘나사의 회전’은 고전 유령극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무대 연출에서는 심리극의 특성과 상징적 공간 구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이 작품의 핵심은 실재와 환상, 객관과 주관이 어디에서 분리되는지 알 수 없는 불확실성에 있으며, 연출가들은 이를 무대에서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데 집중합니다.
가장 일반적인 연출 방식은 무대를 하나의 폐쇄된 심리공간으로 구성하는 것입니다. 블라이 저택은 물리적 공간인 동시에 가정교사의 내면을 반영하는 심리적 투사로 작용하며, 조명, 배경, 소품은 그녀의 감정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예를 들어, 유령이 등장할 때 무대 전체가 푸르스름한 조명으로 덮이거나, 벽이 비정상적으로 기울어진 구조로 표현되어 현실의 왜곡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연출에서는 두 명의 유령이 실제로 존재하는 인물인지, 혹은 환영인지에 따라 접근이 달라지며, 일부 연출은 유령을 실제 배우로 무대에 등장시키지 않고, 조명과 그림자, 음향으로만 존재감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는 관객이 가정교사의 관점에서 모든 사건을 지켜보도록 유도하며, 그녀의 시점에 의존하는 극적 구조를 시각적으로 구현합니다.
아이들의 연출 또한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순수한 존재로 그려질 수도 있지만, 때로는 의도적으로 불안정하거나 이중적인 언행을 보이게 하여, 이들이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라 적극적인 서사의 일원일 수도 있음을 암시합니다. 특히 마일스의 캐릭터는 연출에 따라 그 해석이 크게 달라지며, 마지막 장면에서 그의 죽음이 가정교사의 과잉보호 때문인지, 혹은 유령과의 내적 싸움 때문인지를 애매하게 처리함으로써 극의 여운을 남깁니다.
전반적으로 ‘나사의 회전’의 연출 의도는 공포의 시각적 구현이 아니라, 공포의 내면화와 관객의 심리적 반응을 극대화하는 데 있습니다. 오페라 무대가 단순한 이야기 전달의 수단이 아닌, 인간 내면의 불안과 환상을 담아내는 심리적 공간이 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20세기 오페라 연출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한 사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나사의 회전’은 단순한 유령 이야기 이상의 깊이를 가진 심리 오페라로, 인간의 불안정한 감정과 진실을 향한 강박, 그리고 그에 따르는 파괴적 결과를 탐구한 작품입니다. 벤저민 브리튼은 제한된 악기 편성과 음악적 기법을 통해 극도의 긴장감을 창출하며, 청중이 끝까지 해석을 멈출 수 없도록 구성했습니다. ‘나사의 회전’은 관객 각자의 해석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며, 그 여운은 오페라가 끝난 이후에도 오래 남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