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잔티움 제국의 첩보원이 음모를 파헤치는 대체 역사 소설
요즘은 웹소설 장르 중 대체역사 장르가 인기가 있습니다. 주로 현대인이 타임슬립이나 과거 인물로 빙의되어 역사를 바꾼다는 내용이 대세이더군요. 저도 꽤 좋아해서 여러 편을 찾아 읽어보기도 했습니다. 이런 대체역사 장르의 전형이 된 작품이 오늘 소개하는 <비잔티움의 첩자>입니다. 잘 쓴 대체역사 소설은 어떤 기준을 충족시켜야 할까요? 저는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것인 만큼, 세계관의 정합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작은 변수도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만큼, 대체역사 속 변동점이 합리적인 결과로써 도출되어야 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비잔티움의 첩자>는 엄밀하고 정교하게 역사의 변동점을 제시합니다. 원인과 결과가 설득력이 있게 제시되죠. 요즘 유행하는 대체역사 웹소설처럼 도파민 터지는 사이다만 가득한 소설은 아닙니다만, 더 깊이 있고 설득력 있는 소설을 찾으신다면 <비잔티움의 첩자>를 추천해 드립니다.
<비잔티움의 첩자 (Agent of Byzantium)>는 해리 터틀도브(Harry Turtledove)가 1987년에 발표한 대체역사 소설로, 실제의 세계사에서 결정적인 전환점 하나를 바꾸어 완전히 다른 세계를 상상해 보는 ‘대체 역사(alternate history)’ 장르의 대표작입니다. 이 소설은 일련의 단편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이 연대기처럼 이어지며 전체적으로 하나의 통일된 세계관을 형성합니다. 소설 속 주인공은 비잔티움 제국의 정보원이자 외교관인 바실 아르기로스라는 인물로, 그는 거대한 제국의 안위를 위해 여러 사건을 해결하는 임무를 수행합니다.
작품의 전제는 ‘이슬람이 탄생하지 않았다면’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합니다. 이슬람교가 태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라비아 반도는 분열된 부족 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역사상 이슬람의 팽창으로 인해 몰락했던 비잔티움 제국은 여전히 세계의 중심 문명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서유럽은 문화와 과학에서 후진성을 면치 못하며, 동로마 제국은 기술과 행정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게 됩니다. 이 세계에서 비잔티움은 강력한 종교적, 정치적 권위를 지닌 채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를 무대로 다양한 세력과 교섭하며 생존과 지배를 꾀하고 있습니다.
주인공 바실 아르기로스는 제국의 전략적 이익을 지키기 위해 첩보와 외교, 과학과 문화의 최전선에서 활동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매우 지적이고 유능한 인물로, 냉철한 판단력과 정치적 감각, 뛰어난 언어 능력을 바탕으로 제국의 적들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합니다. 각각의 단편은 그가 수행하는 임무 하나하나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여기에는 새로운 기술의 유입, 적국의 음모, 종교적 분쟁, 과학적 발견, 정치적 암투 등이 얽혀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 이야기에서는 이슬람이 존재하지 않는 대신 다른 철학적 기반에서 출현한 종교가 지역을 지배하고 있으며, 바실은 이 종파들과의 긴장 속에서 종교적 갈등을 관리해야 합니다. 또 다른 이야기에서는 실험적인 무기 기술이나 인쇄 기술이 새로운 사회적 변화를 일으킬 위기에 놓이면서, 정보와 권력을 둘러싼 이권 다툼이 발생합니다. 그때마다 바실은 절묘한 전략과 감각으로 위기를 해결하며, 독자들은 한 편의 정치 스릴러 같은 서사 속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비잔티움의 첩자>는 대체역사 소설이지만, 단지 역사의 표면을 바꾸는 데 그치지 않고, 과학과 문화, 기술의 발전 과정까지 세심하게 설계하여 독자에게 설득력 있는 가상의 세계를 제공합니다. 또한, 주인공 바실이 지닌 도덕적 갈등과 인간적 면모는 이 소설이 단순한 모험담이 아님을 보여주며, 그의 여정을 통해 역사의 복잡성과 인간 존재의 의미에 대해 성찰하게 만듭니다.
대체역사 소설 장르의 전형을 확립한 작품
<비잔티움의 첩자>는 역사와 상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대체역사 소설로, 장르의 전형을 확립한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해리 터틀도브는 ‘대체 역사 소설의 아버지’라고 불릴 만큼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갖고 있으며, 이 소설은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특히 역사에 대한 정통한 이해와 치밀한 설정, 탄탄한 이야기 구성력은 이 작품이 오랜 시간 동안 많은 독자들에게 회자된 이유입니다.
이 소설이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대체역사라는 설정을 피상적인 변화에 그치지 않고, 사회의 구조, 문화, 과학 기술, 국제 질서 등 전 영역에 걸쳐 구체적으로 시뮬레이션했다는 점입니다. 단순히 ‘이슬람이 없었다면 비잔티움이 더 번성했을 것이다’는 예상을 넘어, 실제로 그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역사적 파급 효과를 세밀하게 묘사합니다. 이를테면, 지중해 무역의 판도가 어떻게 달라졌을지, 종교 개혁의 양상은 어떤 형태를 띠었을지, 과학 기술의 발전이 어떤 경로를 택했을지를 구체적으로 탐구하며, 작가의 상상력이 단순한 창작에 그치지 않고 ‘가능한 역사’로 느껴지게 만듭니다.
작품은 다양한 역사적 요소를 통합하면서도, 문학적인 완성도 역시 높습니다. 단편 형식의 서사를 취하고 있음에도 각 편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하나의 장편소설처럼 흐름이 자연스럽고, 주인공 바실 아르기로스라는 인물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성장하고 변화하며 입체적인 성격을 획득합니다. 그는 단순한 제국의 충복이 아니라, 개인적인 신념과 사명, 정체성 사이에서 갈등하며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냅니다. 이러한 인물 중심 서사는 독자가 세계관에 몰입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문체적으로도 <비잔티움의 첩자>는 역사적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고전적인 어휘와 문장을 활용하면서도, 현대 독자에게는 낯설지 않은 서술 방식으로 흡입력을 유지합니다. 작가는 고대와 중세의 정치, 종교, 군사, 과학을 두루 다루면서도 학술적이지 않고, 오히려 이야기 속에 녹아 있는 정보로 독자의 흥미를 자연스럽게 유도합니다. 이는 해리 터틀도브가 역사학 박사 출신이라는 점과 무관하지 않으며, 그가 쌓아온 학문적 깊이가 소설 곳곳에서 설득력을 더합니다.
평론가들은 <비잔티움의 첩자>를 두고 ‘대체 역사 소설의 모범적인 사례’라며 극찬해 왔습니다. 일부는 SF보다는 역사소설로 읽어야 한다고 평가할 정도로, 작품의 리얼리즘은 뛰어납니다. 특히 현대 정치와 종교 갈등에 대해 은유적으로 성찰할 수 있게 해 주며, 대체 역사라는 장르가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현재에 대한 통찰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합니다.
물론, 대체 역사 장르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에게는 배경 설정이 다소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이슬람의 부재, 비잔티움의 지속, 기술 발전의 이탈이라는 전제를 받아들이는 데 일정한 적응 기간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 과정을 넘어설 경우, 이 작품은 독자에게 깊은 사유와 몰입을 동시에 제공하는 드문 소설이 됩니다.
결론적으로 <비잔티움의 첩자>는 단순히 “다른 역사”를 보여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움직이는 제국, 변화하는 과학과 철학을 보여주는 살아 있는 이야기입니다. 이는 해리 터틀도브가 왜 대체 역사 장르의 거장으로 불리는지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며, 역사와 소설의 경계를 넘나드는 문학을 찾는 독자들에게 강력히 추천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학문적 기반과 상상력을 결합한 작가, 해리 터틀도브
해리 터틀도브(Harry Turtledove)는 1949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난 소설가이자 역사학자이며, 현대 대체 역사 소설의 가장 대표적인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학문적 기반과 창의적인 상상력을 결합해 수많은 작품을 발표했으며, 역사에 기반을 둔 SF, 판타지, 대체 역사 장르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확립했습니다. 그의 작품은 단순한 문학적 상상이 아닌 ‘가능한 과거’에 대한 정밀한 시뮬레이션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터틀도브는 UCLA(캘리포니아대학교 로스앤젤레스캠퍼스)에서 비잔티움 역사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그의 첫 작품도 고대와 중세사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했습니다. 초기에는 ‘에릭 아이번(Eric Iverson)’이라는 필명을 사용하기도 했으나, 이후 본명으로 활동을 재개하며 대체 역사 소설의 거장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그의 대표작 중에는 <세계가 달라진 날(Guns of the South)>, <다른 나치의 전쟁(Worldwar Series)>, <비잔티움의 첩자(Agent of Byzantium)>, <미국 분열 시리즈(Southern Victory Series)> 등이 있으며, 이들 대부분은 실제 역사에서 한 가지 사건이 달랐을 경우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지를 탐구합니다. 예를 들어, 남북전쟁에서 남부가 승리했다면, 나치 독일이 외계인의 침공을 받았다면, 이슬람이 존재하지 않았더라면과 같은 전제를 통해 인간 사회의 구조, 이념, 전쟁, 기술 발전 등을 구체적으로 조망합니다.
그는 장르문학 작가로는 드물게 학문적 깊이와 대중적 흥미를 동시에 갖춘 작가로 평가받습니다. 그의 작품은 단지 상상의 산물이 아니라, 역사에 대한 철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며, 특히 정치, 외교, 군사사에 대한 묘사에서 높은 사실성을 보여줍니다. 실제로 역사학자들이 그의 작품을 분석 대상으로 삼을 정도로 학술적 가치도 인정받고 있습니다.
또한, 터틀도브의 작품은 복잡한 이념과 문화, 종교 간의 갈등을 중심에 두고 있어, 단순한 ‘무엇이 달라졌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왜 그런 선택을 하게 되었는가’, ‘그 선택은 누구에게 이득이었는가’를 깊이 성찰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그의 모든 작품에 일관되게 흐르며, 독자들로 하여금 과거뿐 아니라 현재를 되돌아보게 만듭니다.
그는 생애 동안 100편이 넘는 작품을 발표하였으며, 단편과 장편, 시리즈와 독립 소설 등 다양한 형식으로 대체 역사 장르를 확장해 왔습니다. 또한 그는 꾸준히 집필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최근까지도 새로운 대체 역사 작품을 발표하며 여전히 건재한 창작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해리 터틀도브는 단순한 이야기꾼을 넘어, 역사를 재해석하고 재구성하는 작업을 통해 ‘문학 속의 역사’와 ‘역사 속의 문학’을 동시에 실현한 작가입니다. <비잔티움의 첩자>는 그의 작가적 역량이 집약된 초기 대표작으로, 대체 역사 장르의 입문자뿐 아니라, 역사와 정치에 관심 있는 독자 모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는 소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