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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지식의 원천 <사마천 사기>

by beato1000 2026. 1. 10.

사기 책 표지
<사마천 사기>

 

 

 

중국 역사상 최초의 기전체 통사

서양에서는 헤로도토스를 일컬어 '역사의 아버지'라 부릅니다. 동양에서는 역사의 아버지라고 부를 사람이 있다면 바로 사마천일 것입니다. 과거 동아시아의 지식인들은 사마천의 <사기>에 나온 역사적 인물들에 빗대어 자신의 행동을 설명했습니다. 왕에게 충언을 고할 때에는 자신을 <사기>에 언급된 충신을 인용하며 자신의 행동을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지식인들은 <사기>의 영웅과 충신들의 고사를 읽고 또 읽으며 자신을 역사적 인물과 일치시키자 노력했습니다. <사기>는 이처럼 동아시아 지식인들의 사유에 깊이 영향을 준 책이기도 합니다. 

<사기(史記)>는 중국 전한 시대의 역사가 사마천(Sima Qian, 司馬遷)이 집필한 방대한 역사서로, 중국 역사상 최초의 본격적인 기전체(紀傳體) 통사로 평가받습니다. 약 3천 년에 이르는 역사를 다룬 이 책은 단순한 왕조 연대기가 아니라 인간과 사건, 사상의 흐름을 입체적으로 조명한 고대 동아시아 최고의 역사 문헌입니다. 사마천은 진시황부터 한 무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과 인물의 삶을 기록하며, 기존의 왕 중심 사관을 넘어 인간 중심, 사실 중심의 서술 방식을 확립합니다.
<사기>는 총 130권(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다섯 가지 구성 요소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첫째, 본기(本紀)는 제왕과 제후들의 통치 연대를 중심으로 기술하며, 사기의 기본 골격이 됩니다. 둘째, 표(表)는 연대기와 계보를 표 형식으로 정리해 연대별 사건의 흐름을 이해하기 쉽게 구성합니다. 셋째, 서(書)는 예법, 음악, 천문, 경제, 제도 등 각종 제도적 주제를 기술하며 당시의 문명 수준과 정책을 설명합니다. 넷째, 세가(世家)는 제후나 유력 가문에 관한 전기를 담아, 중앙 권력 이외의 역사적 흐름도 조망합니다. 마지막으로 열전(列傳)은 왕이나 귀족이 아닌 일반 인물들, 예컨대 유가, 법가, 도가 사상가나 정치가, 상인, 자객, 충신, 간신 등을 다루어 다양한 인간 군상을 생동감 있게 전달합니다.
특히 <사기>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받는 부분은 열전입니다. 이 부분에서는 맹상군, 염파, 인상여, 자객 전(荊軻), 상앙, 한신 등 개성과 의지를 가진 인물들이 서사적으로 묘사되며, 독자에게 인간적인 공감과 감동을 줍니다. 사마천은 이 인물들의 말과 행동을 생생하게 그려내며, 역사 속 인간의 내면과 갈등을 드러냅니다. 이는 단지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인생의 드라마이자 도덕적 질문을 던지는 문학적 요소로 읽히기도 합니다.
또한 <사기>는 사관(史官)의 객관성과 주관성의 경계를 넘나들며, 역사에 대한 사마천의 철학을 담고 있습니다. 그는 단순히 사건을 기록하는 것을 넘어, 그 사건의 본질과 인간적인 의미에 집중했습니다. 예를 들어, 항우와 유방의 대결을 서술하면서도 항우의 비극성과 인간적 면모에 깊은 애정을 보이며, 유방의 정치적 승리를 인정하면서도 그의 냉혹함을 지적하는 태도를 보입니다.
이처럼 <사기>는 단순한 역사서 이상의 가치를 지니며, 문학, 철학, 정치사, 사상사의 측면에서도 중요하게 평가됩니다. 동양 고전 중에서도 가장 인간 중심적이며, 복합적인 시각을 제시하는 기록물로, 중국뿐 아니라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친 저작입니다.

 

 

인간과 사회, 권력과 도덕, 승자와 패자를 기록한 중국의 고전

<사기>는 중국 역사뿐 아니라 동아시아 역사 전반에서 가장 위대한 역사서로 평가받습니다. 사마천이 집필한 이 방대한 기록은 단지 사실을 나열한 연대기를 넘어, 인간과 사회, 권력과 도덕, 승자와 패자의 복잡한 내면을 통찰하는 철학적 성찰로 가득합니다. 오늘날에도 <사기>는 역사학, 문학, 철학, 정치학 등 여러 분야에서 필독서로 인정받고 있으며, 사마천은 흔히 “역사의 아버지”로 불립니다.
가장 인상적인 점은 <사기>가 당대의 정치적 압력과 통제 속에서도 놀라운 진실성과 균형감을 보여준다는 사실입니다. 사마천은 한나라 조정에서 신하로서 활동했지만, 황실의 입장만을 대변하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진시황의 통일 업적을 인정하면서도 폭정과 사상의 탄압을 날카롭게 비판하며, 한 무제 치하의 정책에 대해서도 무조건적인 찬양을 삼갑니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역사 기록의 윤리와 진정성에 대해 큰 본보기를 제공합니다. 
또한 <사기>는 문학적 완성도에서도 뛰어납니다. 사마천의 서술 방식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인물의 성격, 동기, 대사, 갈등을 문학적으로 재현하여 한 편의 드라마처럼 읽히게 합니다. 특히 열전의 인물들은 각각 개성과 삶의 철학을 지닌 독립적인 존재로 묘사되며, 독자들은 시대와 공간을 넘어 그들의 삶에 공감하게 됩니다. 이는 후대의 ‘소설’이라는 문학 장르 발전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으며, <사기>가 ‘역사 속의 문학’ 또는 ‘문학 속의 역사’로 불리는 이유입니다.
<사기>의 또 다른 의의는 ‘사람’ 중심의 역사입니다. 이전의 역사서가 왕이나 제국 중심으로 서술되었다면, <사기>는 다양한 계층의 인물들—유명한 장군이나 제후뿐 아니라, 상인, 도적, 사상가, 유학자까지—에 초점을 맞추어 당시 사회를 다층적으로 조망합니다. 이는 사마천이 인간의 삶 자체를 가치 있게 보고자 한 시도이며, 단순한 승자 중심의 역사관을 넘어선 서술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기>는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내용도 담고 있어 많은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역사적 인물의 실책이나 권력자의 비리를 과감히 서술한 탓에, 사마천은 종신형에 해당하는 궁형(宮刑)을 당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그는 “사람은 누구나 죽지만,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죽음은 깃털보다 가볍다”는 각오로 자신의 기록을 완성합니다. 이로 인해 <사기>는 단지 정보의 기록이 아닌, 저자의 신념과 용기가 담긴 산문이라는 점에서 깊은 감동을 줍니다.
오늘날 <사기>는 고등학교 교과서, 대학 인문학 수업, 교양 도서에서 널리 인용되며, 정치와 역사에 대한 통찰을 주는 자료로 활용됩니다. 다양한 번역본과 해설서가 존재하며, 그 문장은 간결하면서도 깊이가 있어 동서고금을 아우르는 고전의 힘을 느끼게 합니다. <사기>는 시간을 뛰어넘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권력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보편적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사마천 작가 소개

사마천(Sima Qian, 司馬遷, 기원전 145년경~기원전 86년경)은 중국 전한 시대의 역사가이자, 문장가이며, <사기>를 집필한 동아시아 역사 서술의 기틀을 세운 인물입니다. 그는 부친 사마담(司馬談)의 뒤를 이어 태사령(太史令), 즉 왕조의 공식 역사가로 활동하면서 고대부터 한 무제 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집대성한 <사기>를 집필하였습니다.
사마천은 산시성(山西省) 용문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유가 고전과 역사서에 통달한 인물이었습니다. 20대 초반에는 전국을 유람하며 민중의 삶과 다양한 지역의 풍습을 관찰했고, 이는 그의 역사 인식과 인물 묘사에 깊이 반영되었습니다. 그는 단순히 궁정에 머물며 역사서를 작성한 것이 아니라, 현장을 직접 보고 듣고 느낀 경험을 바탕으로 기록함으로써, 생생하고 사실적인 서술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사마천의 삶에서 가장 극적인 전환점은 이릅니다. 이릉 장군이 흉노와의 전투에서 패한 후, 이를 변호한 사마천이 한 무제의 노여움을 사 궁형을 받게 되었던 사건입니다. 그는 치욕적인 형벌을 받고도 자결하지 않고 살아남아 아버지의 유업을 계승해 <사기>를 완성합니다. 그는 이를 통해 사서(史書) 집필을 자신의 사명으로 여기며, “나의 책이 후대에 전해져 유가의 도를 밝힌다면 죽음도 두렵지 않다”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그의 이러한 각오는 <사기> 전편에 걸쳐 나타납니다. 단순한 역사 기록자를 넘어, 사마천은 시대를 관통하는 통찰과 인간에 대한 깊은 연민을 지닌 지식인이었습니다. 그의 글은 이성적 판단과 감정적 공감이 조화를 이루며, 독자로 하여금 단순한 과거의 사실을 넘어서 삶과 존재에 대해 숙고하게 합니다.
사마천은 이후 중국 역사학의 기준이 되었고, 그의 서술 방식인 ‘기전체’는 이후의 대부분 역사서에 모범이 되었습니다. <한서>, <삼국지>, <자치통감> 등도 <사기>의 틀을 따랐으며, 조선의 <삼국사기>, <조선왕조실록> 등에도 그 영향이 미쳤습니다. 그의 이름은 단순한 역사 기술자를 넘어서, ‘진실을 위해 생을 바친 사람’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사마천의 인생은 불운했지만, 그가 남긴 기록은 수천 년을 넘어 오늘날까지도 빛나고 있습니다. 그는 권력에 맞서 진실을 기록한 역사가였고, 동시에 문학성과 철학적 깊이를 갖춘 사상가였습니다. 그의 삶과 글은 ‘한 인물이 어떻게 시대를 넘어 불멸이 되는가’를 보여주는 전범이자, 진정한 지식인의 자세를 우리에게 일깨워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