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츠 에크(Mats Ek)는 고전 발레를 현대적인 시각으로 해체하고 재구성한 북유럽 현대무용의 대표 안무가입니다. 그의 작품은 발레의 틀 안에서 벗어나 현대무용의 자유로운 언어로 인간의 내면과 사회적 메시지를 표현해 내며, 감정 표현의 밀도와 연극적 서사 구성이 특징입니다. 본 글에서는 마츠 에크의 주요 작품을 중심으로 그의 무용 세계를 현대무용의 특성, 감정 표현 방식, 서사극적 구조라는 세 가지 핵심 키워드를 통해 분석해 보겠습니다. 무용 전공자와 예술 애호가는 물론, 창작자에게도 깊은 영감을 줄 수 있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마츠 에크 작품세계
마츠 에크(Mats Ek)의 작품 세계는 전통적인 무용 문법에서 벗어난 탈중심적 움직임에서 출발합니다. 그는 어머니 브리트 에크와 아버지 잉그마르 베리만의 영향을 받아 극적인 감수성과 무용에 대한 예술적 통찰력을 동시에 체득했습니다. 고전 무용이 갖는 형식성과 미학을 존중하면서도, 그로부터 벗어나 현대적인 주제를 강렬하게 풀어내는 방식은 그만의 독창적 스타일을 만들어냈습니다. 대표작인 ‘지젤(Giselle)’에서는 원작의 순수하고 희생적인 여성이 아닌, 감정의 격랑 속에서 자신의 상처를 온몸으로 표현하는 강한 여성을 내세웁니다. 백색의 튀튀 대신 흙탕물 위를 맨발로 걷는 여주인공의 모습은, 발레가 아닌 삶을 무대 위에 올리는 행위였습니다. 이러한 표현은 그가 현대무용을 통해 추구하는 리얼리즘의 핵심입니다. 또 다른 대표작 ‘백조의 호수’는 날갯짓을 하는 우아한 무용수가 아닌, 억압된 인간 욕망과 사회적 규범에 갇힌 존재로 재해석됩니다. 동작은 부드럽기보다는 강하고 절제되어 있으며, 때로는 굴절되고 일그러져 있습니다. 이는 마치 몸이 말하는 언어가 아닌, 몸이 비명을 지르는 형국입니다. 에크는 현대무용을 통해 몸을 ‘생각하는 도구’로 사용하며, 관객에게 감정적 전율을 일으키는 무대를 구현합니다. 이러한 시도는 무용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해체하고, ‘무용은 왜 존재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에크는 단순한 움직임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그 움직임이 말하는 바, 드러내는 감정, 질문하는 방식에 더 큰 가치를 둡니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무용을 통해 시를 쓰고, 드라마를 구성하며, 철학을 전달하는 예술가로 불릴 만합니다.
표현 방식
마츠 에크의 무용은 단순히 시각적인 미감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서, 감정의 물리적 구현을 목표로 합니다. 그는 무용수들의 몸을 도구가 아닌, 감정의 화신으로 만듭니다. 특히 분노, 우울, 갈망, 광기 같은 복합 감정들을 정제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 표현하는 데 탁월합니다. '카르멘(Carmen)’에서는 여성 주인공의 욕망과 사회적 억압, 자유에 대한 갈망이 빠르고 불규칙한 동작, 몸의 꼬임, 돌연한 정지 상태로 나타납니다. 그녀의 욕망은 발끝이 아닌 척추와 복부, 심지어 손가락 끝의 떨림으로 표현됩니다. 이 작품은 ‘여성의 몸’이 어떻게 사회적 규범 속에서 해석되고 억압되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성적 표현의 한계와 자유를 무용이라는 예술로 풀어낸 대표적 예입니다. 감정 표현의 극대화는 비단 개별 인물에 그치지 않습니다. 마츠 에크는 전체 무대 구성과 조명, 음악, 동작의 반복을 통해 집단의 정서를 하나의 유기체처럼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는 무용수들의 군무를 통해 군중의 감정적 흐름을 조절하며, 관객이 캐릭터 하나에 몰입하기보다 사회 전체의 분위기와 정서를 감각적으로 느끼도록 유도합니다.
그의 작품에서 감정은 신체의 일부로 녹아듭니다.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 몸을 통제하는 구조입니다. 무용수가 자신의 동작을 통제하지 못하고 휘말리는 듯한 장면은 마치 감정이 인격을 잠식하는 인간의 심리 상태를 투사한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마츠 에크는 감정을 시청각적 요소가 아닌 ‘신체적 경험’으로 전환시켜, 관객으로 하여금 작품을 보고 듣는 것이 아니라 ‘느끼게’ 만듭니다.
안무 특성
마츠 에크의 안무는 대부분 극적인 구조와 서사를 중심으로 짜여 있습니다. 단순히 움직임의 나열이 아닌, 이야기의 흐름과 기승전결, 인물 간의 갈등과 해소가 존재하는 연극적 무대 구성을 지향합니다. 이러한 서사극적 특징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영향 아래에서 탄생한 유럽식 서사극 전통과 닮아있습니다. 그는 무용을 통해 인간의 이야기, 사회의 모순, 존재의 불안을 보여주며 무대 위에 ‘질문’을 던집니다. ‘하우스(House)’라는 작품에서는 가정이라는 폐쇄된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억압과 권력, 외로움을 중심으로 이야기 구조를 짜고, 인물들은 말없이 몸짓으로만 서로의 위치를 확인하고, 저항하고, 무너집니다. 실제 세트로 지어진 집 내부는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리얼하게 구성되어, 관객에게 현실적인 몰입감을 부여합니다. 또한, 그는 무대 연출에 있어서 소품, 조명, 음악을 정교하게 활용합니다. 의도적으로 과장된 조명 전환, 소리의 반복, 갑작스러운 무대 전환은 브레히트의 '이화 효과'처럼 관객의 몰입을 끊고, 감정이 아닌 이성적 사유를 유도합니다. 이는 단순한 감성 소비가 아닌, 무대를 통한 사회적 메시지 전달이라는 궁극적 목표를 위한 장치입니다. 등장인물 간의 감정선도 깊이 있는 서사를 통해 조율됩니다. 특히 ‘춤추는 노인’과 같은 작품에서는 노화, 외로움, 죽음이라는 철학적 주제를 노인의 움직임과 일상의 반복으로 표현함으로써, 삶의 연극성을 날카롭게 해석합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마츠 에크의 작품이 단순한 공연이 아닌, 무용적 사유와 철학이 결합된 예술임을 보여줍니다.
마츠 에크는 무용의 본질을 끊임없이 재정의해온 예술가입니다. 그는 고전 발레를 해체하고 현대적인 언어로 다시 구성함으로써, 무용을 단순한 형식에서 벗어나 인간 존재에 대한 탐구 도구로 확장시켰습니다. 신체는 그의 작품에서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감정과 사회, 철학을 모두 담아내는 표현체입니다. 그의 감정 표현 방식은 관객의 정서적 몰입을 유도하고, 서사극적 구조는 관객이 무대를 관찰하고 사유하게 만듭니다. 무용이 감각의 예술이 아니라 지성의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여실히 증명합니다. 예술 전공자, 무용가, 창작자 모두에게 마츠 에크의 작품은 통찰과 영감을 동시에 주는 예술적 유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