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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던, 미니멀리즘, 극적 표현의 진수 벨기에

by beato1000 2025. 5. 8.

벨기에 무용 미니멀리즘 사진

 

 

벨기에는 현대무용의 실험성과 다양성이 공존하는 무용 강국이다. 이 작은 유럽 국가는 1980년대 이후 유럽 무용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며, 다양한 사조가 동시에 형성되고 영향을 주고받았다. 본 글에서는 벨기에 현대무용의 주요 사조인 포스트모던, 미니멀리즘, 극적 표현주의를 중심으로 각 흐름의 특징, 대표 안무가, 작품 경향 등을 비교 분석하며, 벨기에 무용의 미학적 다양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한다.


포스트모던: 개념의 해체와 신체의 재해석

포스트모던 사조는 1980년대 벨기에 현대무용의 주류 사조로 등장하였다. 이는 고전 발레나 모던무용의 서사 중심, 미적 일관성, 테크닉 우선주의를 비판하며 등장한 경향이다. 안느 테레사 드 케르스마커(Anne Teresa De Keersmaeker), 얀 파브르(Jan Fabre) 같은 작가들이 대표적이며, 그들은 움직임을 이야기나 감정의 도구가 아닌 하나의 독립적 구조로 다뤘다.

특히 드 케르스마커의 《Fase》(1982)나 《Rosas danst Rosas》(1983)는 음악과 신체 움직임을 수학적으로 배열하며, 반복과 리듬의 긴장감 속에서 관객이 감각적으로 사고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이 작품들은 어떤 극적인 상황이나 캐릭터를 보여주기보다는, 움직임 자체가 어떤 질서나 개념을 전달하는 방식을 택한다. 이는 포스트모던 미학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얀 파브르는 여기에 더해 신체의 물리적 한계를 드러내는 실험적 퍼포먼스를 통해 신체의 존재론적 의미를 탐구했다. 예를 들어 그의 《Quando l’uomo principale è una donna》는 젠더, 고통, 반복적 몸짓 등을 통해 무용이 아니라 철학적 행위로 전환되는 지점을 보여준다. 벨기에의 포스트모던 무용은 단순히 무대 위 움직임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예술 그 자체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역할을 수행했다.


미니멀리즘: 반복과 구조의 예술

미니멀리즘은 미국의 음악 사조에서 비롯되어 벨기에 무용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특히 스티브 라이히, 필립 글래스(Philip Morris Glass)등의 음악을 무용에 적용한 안무가들이 미니멀리즘의 기수로 활동했다. 이 사조는 움직임의 수를 줄이고 반복을 강조하며, 시간의 경과에 따른 미묘한 변화를 관찰하게 한다.

대표 안무가는 역시 안느 테레사 드 케르스마커다. 그녀의 작품은 미니멀 음악과의 결합으로 유명하며, 단순한 움직임 속에 내재된 리듬과 구조를 강조한다. 《Fase》에서는 라이히의 음악에 맞춰 같은 동작을 수십 번 반복하되, 시간차와 각도 변화로 움직임에 미세한 차이를 주어 시청각적 환영을 창출한다. 이러한 방식은 ‘움직임을 보는 훈련’을 요구하며, 감각을 최대한 열어야만 비로소 움직임의 차이를 인식할 수 있게 한다.

미니멀리즘은 무용수 개인의 테크닉보다, 움직임의 구성 원리와 패턴에 초점을 둔다. 무용수는 그 자체로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오히려 기계처럼 반복되는 구조 속에서 의미 없는 듯 보이는 움직임을 수행한다. 하지만 오히려 이 단조로움 속에서 관객은 다양한 감정과 해석을 떠올리게 된다.

벨기에에서 미니멀리즘은 교육적 실천이기도 하다. PARTS 같은 기관에서는 안무 훈련 초기부터 리듬과 반복, 미니멀 패턴의 구조를 분석하고 적용하게 한다. 이는 이후 극적 표현이나 철학적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데 기초가 되는 훈련으로 여겨진다.


극적 표현: 감정과 정체성의 무대화

반면, 벨기에 현대무용의 또 다른 강력한 흐름은 극적 표현주의이다. 이는 얀 파브르나 시디 라르비 셰르카위(Sidi Larbi Cherkaoui) 같은 안무가를 중심으로, 감정, 역사, 종교, 문화 정체성을 무대 위에서 적극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경향이다.

이 흐름은 ‘움직임’보다는 무대 위 서사, 상징, 협업 예술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중점을 둔다. 예컨대 셰르카위의 《Sutra》는 중국 샤올린 수도사와의 협업을 통해 동양 무술의 철학과 서양 현대무용의 신체구조를 통합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공간, 세트, 음악, 움직임이 하나의 거대한 메시지를 향해 정렬되어 있으며, 종교적 상징과 인간의 내면성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얀 파브르 또한 신체의 극한을 드러내는 연출을 통해, 단순한 무용을 넘어 퍼포먼스 아트로 확장시키는 작업을 지속해 왔다. 그의 작품은 종종 피로감, 반복, 고통의 시각화를 통해 관객이 본능적으로 반응하도록 유도한다.

극적 표현 사조는 관객과의 감정적 교감을 중시하며, 그로 인해 보다 대중적 접근도 가능하다. 특히 스토리텔링, 역사적 문맥, 젠더 정체성 같은 주제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오늘날 사회적 이슈와 결합하는 현대무용의 실천적 가능성을 보여준다.

벨기에 현대무용은 단일한 경향이나 스타일에 갇히지 않고, 실험성과 감정, 구조와 철학이 혼재된 무대 예술의 종합체로 성장해 왔다. 포스트모던, 미니멀리즘, 극적 표현 세 가지 사조는 서로 다른 미학을 지향하지만, 궁극적으로 ‘몸을 통한 세계 해석’이라는 공통된 철학을 공유한다. 각 사조의 차이와 특성을 이해하고 감상한다면, 현대무용은 결코 어려운 예술이 아닌, 인간 존재를 탐색하는 가장 직관적인 언어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