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들의 죽음을 통해 '이별'이라는 불가피한 운명 앞에서 슬픔의 의미를 묻는 작품
조지 선더스(George Saunders)의 장편소설 <바르도의 링컨(Lincoln in the Bardo)>은 2017년 출간과 동시에 세계 문단의 주목을 받은 작품으로, 인간의 죽음, 슬픔, 그리고 초월의 가능성을 깊이 탐구한 현대문학의 걸작으로 평가받습니다. ‘바르도(Bardo)’는 티베트 불교에서 죽음과 환생 사이의 중간 상태를 뜻하는 개념으로, 소설의 핵심 공간이자 상징으로 작용합니다.
이 작품은 미국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의 실제 경험에서 출발합니다.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862년, 링컨의 아들 윌리(Willie Lincoln)가 열한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역사 기록에 따르면 링컨은 아들의 시신이 안치된 묘소를 밤중에 찾아가 품에 안고 울었다고 전해집니다. 선더스는 이 짧은 역사적 일화를 바탕으로, 현실과 영혼의 세계가 교차하는 독창적인 서사를 만들어 냅니다.
소설의 배경은 윌리가 묻힌 조지타운의 오크힐 묘지입니다. 그러나 이곳은 단순한 무덤이 아니라, ‘바르도’라는 영혼의 중간계로 묘사됩니다. 죽은 자들의 영혼들은 여전히 이승에 미련을 두고 있으며, 자신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 채 살아 있는 자들을 그리워합니다. 이들은 각자의 삶을 회상하며, 미처 해결하지 못한 감정과 욕망을 되새깁니다.
이곳에 갓 도착한 어린 윌리는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혼란에 빠집니다. 묘지의 다른 영혼들—과거의 죄책감, 불륜, 욕망, 두려움에 사로잡힌 망자들—은 그를 위로하려 하지만, 윌리의 영혼은 여전히 아버지 링컨의 품을 그리워합니다. 링컨은 현실 세계에서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아버지로서의 절망과 국가의 리더로서의 의무 사이에서 괴로워합니다.
소설은 바로 이 지점에서, 인간의 감정이 사후세계와 맞닿는 순간을 포착합니다. 바르도의 영혼들이 윌리를 구원하기 위해 서로의 기억을 엮어 가는 동안, 링컨은 묘지에서의 짧은 체험을 통해 생과 죽음, 개인적 비극과 역사적 사명을 동시에 받아들이게 됩니다.
<바르도의 링컨>은 전통적인 서사 구조를 완전히 해체한 독창적인 형식으로 쓰였습니다. 인용문, 역사 기록, 허구의 증언, 망자들의 목소리가 교차하며 한 편의 다성적 오케스트라처럼 구성됩니다. 등장인물의 대사는 대화가 아니라 ‘목격담’의 형태로 이어지며, 각 영혼이 서로 다른 관점에서 사건을 해석합니다. 이 독특한 구조는 독자로 하여금 마치 장례식의 합창을 듣는 듯한, 슬프고도 숭고한 체험을 하게 합니다.
결국 이 작품은 한 아들의 죽음을 통해 인간이 ‘이별’이라는 불가피한 운명 앞에서 어떻게 슬픔을 의미로 전환하는가를 묻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랑이야말로 죽음을 초월하는 유일한 언어’임을 조용히 증명합니다.
형식적 실험성과 인간적 공감의 완벽한 결합을 성취한 소설
<바르도의 링컨>은 출간 직후부터 문학비평계의 뜨거운 찬사를 받았으며, 2017년 맨부커상(Man Booker Prize) 수상작으로 선정되었습니다. 평론가들은 이 작품을 “실험성과 감정적 진정성을 동시에 달성한 21세기 문학의 이정표”라고 평가했습니다.
이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은 형식적 실험성과 인간적 공감의 완벽한 결합입니다. 조지 선더스는 100명 이상의 화자를 등장시켜, 각기 다른 목소리로 서사를 엮습니다. 죽은 자들의 대화, 역사적 인물의 인용, 그리고 가상의 문헌이 교차하면서, 한 인물의 죽음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슬픔’을 노래하는 합창으로 확장됩니다. 이러한 다성적 구성은 도스토예프스키의 폴리포니 구조를 연상시키면서도, 현대의 감각으로 재창조된 독창적 장치로 평가됩니다.
또한 <바르도의 링컨>은 미국 역사와 인간 내면을 동시에 읽어내는 통찰력으로 주목받습니다. 링컨은 아들의 죽음을 통해, 국가의 분열과 전쟁의 비극 속에서도 인간으로서의 연민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는 바르도라는 초현실적 공간에서 영혼들의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체험하며, 인간의 고통이 곧 인간다움의 근원임을 깨닫습니다. 선더스는 이를 통해 정치적 권력자조차도 결국 ‘상실을 통해 성장하는 인간’으로 환원시킵니다.
이 작품은 또한 죽음과 슬픔을 다루면서도 결코 절망적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죽음을 통해 인간이 얼마나 깊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가를 보여줍니다. 망자들이 윌리를 구하려는 노력은 그들의 구원이자, 살아 있는 인간을 향한 마지막 애정의 표현입니다. 바르도라는 공간은 결국 인간의 기억과 사랑이 머무는 정신적 장소로 재해석됩니다.
문학적으로도 이 작품은 ‘형태의 혁명’으로 불립니다. 각 장이 짧은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역사적 문서와 허구의 목소리가 뒤섞입니다. 이로써 현실과 초현실, 진실과 상상이 경계를 잃습니다. 독자는 혼란 속에서 점차 ‘이야기의 리듬’을 체험하게 되고, 그것이 곧 죽음과 삶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감정적 흐름으로 이어집니다.
비평가들은 선더스의 문체를 “동정심으로 빚어진 문장”이라 표현합니다. 그는 냉소나 비극으로 인간을 묘사하지 않습니다. 대신, 상실과 어둠 속에서도 연민을 발견하는 눈으로 인물을 바라봅니다. <바르도의 링컨>은 그가 단편소설의 거장이라는 평가를 넘어, 인간 존재 전체를 포용하는 대서사시를 완성했음을 증명한 작품입니다.
이 소설은 궁극적으로 독자에게 묻습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이를 잃고도 여전히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가?” 그 질문 앞에서, 독자는 링컨의 고통과 함께 자신의 상실을 돌아보게 됩니다.
21세기 가장 인간적인 작가, 조지 선더스
조지 선더스(George Saunders, 1958~ )는 미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독창적인 단편소설과 풍자적 서사로 널리 알려진 인물입니다. 그는 인류의 모순과 연민을 동시에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으로 “21세기의 가장 인간적인 작가”라는 평을 받습니다.
미국 텍사스 출신으로, 콜로라도 광산학교에서 지질학을 전공한 그는 젊은 시절 석유탐사 기술자로 일했습니다. 그러나 탐사 현장에서 겪은 인간의 고독과 생존의 모순이 그의 문학 세계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후 시러큐스대학교에서 창작문학(MFA)을 공부하며 작가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조지는 1990년대부터 미국 문단에서 단편소설의 혁신가로 주목받았습니다. 초기 작품집 <시민의 제국>, <목욕장 주의자>, <십대들의 복음> 등은 풍자와 휴머니즘이 결합된 독특한 문체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선더스의 단편에는 자본주의 사회의 부조리, 인간의 무력함, 그리고 그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따뜻한 연민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의 글쓰기 방식은 현실의 잔혹함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그 속에서 인간을 구원하는 감정을 찾아냅니다. 그는 종종 ‘도덕적 상상력’을 문학의 핵심으로 강조하며, 독자가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도록 이끄는 서사를 추구합니다. 이런 점에서 그의 문학은 현실 비판을 넘어, 인간 회복의 서사로 확장됩니다.
2017년 조지 선더스는 첫 장편소설 <바르도의 링컨>으로 맨부커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작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이후에도 그는 단편집 <해와 달과 별에 관한 이야기> 등을 통해 인간 내면의 선함과 약함을 탐구했습니다.
조지 선더스는 문학과 교육 활동을 병행하며 시러큐스대학교에서 오랫동안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는 문학이 사회를 바꾸는 직접적 도구는 아니지만, “인간이 인간을 이해하는 능력을 회복시키는 유일한 예술”이라 말합니다.
조지지의 문장은 종종 유머와 절망, 철학과 감정이 공존합니다. <바르도의 링컨>은 그런 그의 세계관이 완전히 성숙한 작품으로, 죽음이라는 절대적 주제를 통해 인간의 연민을 가장 숭고한 형태로 표현한 소설입니다.
조지 선더스는 오늘날 미국 문학에서 가장 독창적이며, 동시에 가장 따뜻한 목소리를 가진 작가로 평가받습니다. 그의 문학은 독자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여전히 타인의 슬픔을 느낄 수 있는가?” 이 질문이야말로, 그가 모든 작품을 통해 세상에 던지는 가장 진심 어린 메시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