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내면의 어두운 충동을 정교하게 탐구한 소설
<열차 안의 낯선 자들(Strangers on a Train)>은 미국 작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Patricia Highsmith)가 1950년에 발표한 데뷔작으로, 심리 스릴러 장르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작품입니다. 이 소설은 범죄의 동기와 죄책감, 인간 내면의 어두운 충동을 정교하게 탐구하며, 이후 하이스미스가 구축한 ‘도덕적 불확실성의 미학’을 완벽히 예고한 작품으로 손꼽힙니다.
이야기는 두 남자가 열차 안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성공한 젊은 건축가 가이 헤인즈(Guy Haines)는 텍사스로 향하는 열차에서 기묘한 낯선 남자 브루노 앤서니(Charles Bruno)를 만나게 됩니다. 브루노는 지루함과 권태 속에 사는 부유한 청년으로, 냉소적이고 비도덕적인 사고를 가진 인물입니다. 그는 처음 만난 가이와 대화 중 그의 사적인 고민—즉, 이혼 문제와 불만스러운 결혼 생활—에 흥미를 보입니다.
브루노는 농담처럼 제안을 하나 꺼냅니다. “우리 서로의 문제를 해결하죠. 당신의 아내를 내가 죽이고, 내 아버지를 당신이 죽이면 완벽하지 않겠습니까?” 그는 이 계획이 완전범죄가 될 것이라 확신하며, 두 사람 사이의 연결고리가 전혀 없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가이는 당연히 이를 황당한 농담으로 치부하고 자리를 떠나지만, 브루노는 그것을 실제 약속으로 받아들입니다.
며칠 후, 가이의 아내 미리엄이 살해당합니다. 경찰은 여러 정황상 가이를 의심하지만, 그는 자신이 무죄임을 주장합니다. 그러나 곧 브루노로부터 편지가 도착하면서 상황은 더욱 복잡해집니다. 브루노는 자신이 가이의 아내를 ‘약속대로’ 죽였다고 말하며, 이제 가이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여야 할 차례라고 협박합니다.
이때부터 가이는 극심한 내적 갈등에 빠집니다. 그는 살인을 저지르지 않으려 하지만, 브루노의 끈질긴 집착과 심리적 압박, 그리고 외부의 의심으로 인해 점점 파멸의 길로 내몰립니다. 하이스미스는 두 남자의 관계를 단순한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도로 그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서로의 내면에 존재하는 죄의식과 불안, 그리고 인간 본성의 어두운 그림자가 교차하며 도덕의 경계가 무너지는 과정을 세밀하게 묘사합니다.
결국 가이는 죄책감과 두려움 속에서 무너지고, 브루노는 자신의 광기와 죄의식 속에 스스로 갇히게 됩니다. 하이스미스는 이 결말을 통해 ‘악’이란 특정 인물에게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모두의 내면 속에서 조용히 자라나는 심리적 씨앗임을 보여줍니다.
<열차 안의 낯선 자들>은 단순한 범죄 소설이 아니라, 인간의 도덕과 심리의 복잡성을 탐색하는 철저히 내면적인 스릴러입니다.
인간 심리의 어둠을 섬세하게 해부해 범죄가 탄생하는 심리에 주목한 작품
<열차 안의 낯선 자들>은 출간 직후부터 평단과 대중의 폭발적인 주목을 받았습니다.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는 인간 심리의 어둠을 섬세하게 해부하며, 단순한 범죄 스토리 이상의 깊이를 보여주었습니다. 작품은 범죄의 결과보다 ‘범죄가 탄생하는 심리적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비평가들은 이 소설이 스릴러 장르의 형식을 빌리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심리 소설, 나아가 실존주의적 문학의 요소를 담고 있다고 평가합니다. 브루노와 가이의 관계는 선과 악, 가해자와 피해자의 명확한 구분을 흐립니다. 브루노는 미치광이처럼 보이지만, 그의 냉철한 논리와 도덕에 대한 무시 속에는 인간 내면의 자유와 충동에 대한 철학적 탐구가 깔려 있습니다. 반면 가이는 외적으로는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보이지만, 내면에서는 살인의 유혹과 죄의식 사이를 오가며 점점 무너져갑니다. 이 두 인물의 관계는 일종의 ‘거울’ 관계로 작용하며, 하이스미스는 이를 통해 인간의 도덕적 양면성을 노출합니다.
문체 또한 냉정하고 절제되어 있습니다. 하이스미스는 폭력적이거나 감정적인 표현 대신, 인물의 생각과 행동의 미세한 흔들림을 통해 긴장을 조성합니다. 이는 독자가 직접 등장인물의 불안과 긴장을 체험하게 하는 방식으로, 이후 그녀의 대표작인 <리플리 시리즈>에서도 이어집니다.
<열차 안의 낯선 자들>은 알프레드 히치콕(Alfred Hitchcock)에 의해 1951년 영화로 각색되면서 더 큰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히치콕의 영화는 하이스미스의 서사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시각적 긴장과 서스펜스를 극대화했습니다. 그러나 원작이 가진 심리적 복합성은 영화보다 훨씬 더 어둡고 섬세합니다. 하이스미스는 ‘살인’이라는 사건보다 ‘살인을 둘러싼 인간의 죄의식과 도덕적 모호함’에 집중함으로써, 독자를 끝까지 불편하게 만듭니다.
이 작품은 스릴러의 전형을 재정의했습니다. 이전의 범죄소설이 범인의 정체나 범죄의 해결에 초점을 맞췄다면, 하이스미스는 ‘왜 그런 범죄가 일어나는가’에 초점을 옮겼습니다. 그녀의 세계에서는 정의나 복수보다 인간의 심리가 중심에 있습니다. 이 때문에 <열차 안의 낯선 자들>은 이후 수많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특히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과 비교되며 ‘현대적 심리범죄소설의 계보’를 잇는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오늘날 이 소설은 20세기 스릴러 문학의 전환점으로 인정받으며, 퍼트리샤 하이스미스가 이후 ‘도덕 없는 범죄’의 세계를 본격적으로 탐구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작품으로 평가됩니다.
20세기 범죄 심리소설의 거장,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Patricia Highsmith, 1921~1995)는 미국 출신의 소설가로, 20세기 범죄 심리소설의 거장으로 불립니다. 그녀는 인간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죄의식, 도덕적 모호함, 그리고 자기파괴적 욕망을 냉정하고 세밀하게 포착하는 작가로 평가받습니다.
하이스미스는 텍사스주 포트워스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복잡한 가정환경 속에서 자랐습니다. 그녀는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깊은 불안과 상처를 경험했으며, 이러한 감정적 긴장은 평생 그녀의 작품 속에서 변주되었습니다. 뉴욕 버나드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며 글쓰기를 시작했고, 졸업 후 잡지와 만화 시나리오를 집필하며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1950년 발표한 데뷔작 <열차 안의 낯선 자들>은 곧바로 문단의 주목을 받았고, 알프레드 히치콕이 이를 영화화하면서 국제적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후 그녀는 <리플리> 시리즈로 대표되는 범죄 심리소설의 대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특히 <재능 있는 리플리(The Talented Mr. Ripley)>를 비롯한 시리즈는 ‘범죄를 저지르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범죄자의 내면을 세밀하게 탐구함으로써 기존의 도덕적 서사를 완전히 뒤집었습니다.
하이스미스의 작품은 전통적인 선악 구분을 거부합니다. 그녀는 범죄자를 악인으로 그리지 않고, 오히려 인간적이고 현실적인 인물로 묘사합니다. 독자는 그들의 심리에 공감하면서도 동시에 도덕적 불편함을 느끼게 됩니다. 이러한 ‘불안한 공감’은 하이스미스 문학의 핵심으로, 현대 심리 스릴러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또한 그녀는 인간의 외로움, 타인과의 단절, 사회적 위선 같은 주제를 반복적으로 탐구했습니다. 특히 그녀의 인물들은 사회적 규범에 순응하지 않거나, 내면의 욕망과 죄의식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립니다. 하이스미스는 이러한 인물들을 통해 “악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신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그녀의 문체는 건조하고 절제되어 있으며, 감정의 폭발 대신 조용한 불안과 심리적 긴장으로 독자를 압박합니다. 이런 특징 때문에 그녀의 작품은 문학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인정받았으며, <캐롤(Carol)> 같은 작품을 통해서는 사회적 편견과 인간의 욕망이라는 주제를 섬세하게 다루기도 했습니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는 생전에 미국보다 유럽, 특히 프랑스와 독일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녀의 작품은 인간 내면의 어둠을 예리하게 비추는 거울로 남아 있으며, 오늘날에도 수많은 작가와 영화감독들에게 지속적인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