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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 창의 충격적인 데뷔작, <바빌론의 탑>

by beato1000 2025.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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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인생의 이야기> [바빌론의 탑]

 

 

 

 

 

과학적 사고와 신화적 세계관을 치밀하게 결합한 작품

바벨탑 전설은 어릴 때부터 저를 매혹시켜 온 성경 이야기입니다. 어릴 때 창세기를 영화로 만든 작품을 극장에서 본 적이 있는데, 창세기 내용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이 바벨탑 이야기였습니다. 갑자기 언어가 달라져 서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소란이 나는 장면이 아직도 기억이 나네요. 바벨탑 이야기는 이후 여러 현대 작품에서 변주되어 인용되었습니다. 제가 어릴 때 또 좋아했던 만화인 <바벨 2세>에서도 바벨탑 전설이 중요하게 인용되죠. 바벨탑을 다루는 작품 중 최고의 작품은 테드 창의 <바빌론의 탑>입니다. 전 단편으로 먼저 소개되었던 <바빌론의 탑>을 처음 읽고 전율을 느낄 정도로 푹 빠져들었습니다. 

<바빌론의 탑(Tower of Babylon)>은 미국의 과학소설 작가 테드 창(Ted Chiang)의 데뷔작으로, 1990년 출간과 동시에 주목받으며 그 해 네뷸러상 단편 부문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이 소설은 고대 근동 신화를 바탕으로 한 제목에서 출발하지만, 전통적인 종교적 접근보다는 물리학과 철학, 그리고 인간의 지적 호기심을 중심에 두고 서사를 전개합니다. 테드 창은 이 작품을 통해 과학적 사고와 신화적 세계관을 놀랍도록 치밀하게 융합하며, 독자에게 새로운 차원의 사유 경험을 제공합니다.
이야기의 배경은 고대 바빌론 문명입니다. 그러나 독자가 예상하는 역사적 사실과는 다르게, 이 세계의 우주는 중세 천문학 모델인 ‘지구 중심 우주관’을 기반으로 합니다. 즉, 지구는 우주의 중심에 고정되어 있고, 그 위로 하늘의 돔이 있으며, 그 바깥에는 천상의 영역이 존재한다는 구조입니다. 이 세계에서 ‘하늘’은 실제 물리적 장벽으로 존재하며, 인류는 그곳에 도달하고자 거대한 벽돌탑을 쌓아 올립니다. 바로 이것이 이야기의 중심인 ‘바빌론의 탑’입니다.
주인공 힐룸은 숙련된 광산 노동자로, 탑 내부에서 ‘위로’ 향해 벽돌을 쌓는 일을 맡게 됩니다. 그는 동료들과 함께 매일같이 좁고 어두운 통로를 올라가며, 천상의 하늘에 도달하기 위한 건축 작업을 이어갑니다. 이 과정에서 힐룸은 물리적 고난뿐 아니라, 철학적·과학적 질문과 마주하게 됩니다. "하늘은 무엇인가?", "우주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 "신은 인간의 도전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같은 문제들에 대해, 그는 단순한 노동자에서 지적 탐구자로 서서히 변모해 갑니다.
탑을 오르는 여정은 단순한 이동이나 상승이 아니라, 우주와 인간의 관계, 그리고 인식의 구조를 탐험하는 과정입니다. 힐룸과 그의 동료들은 거대한 우주적 구조물 안에서 점차 세상의 본질과 마주하게 되고, 마침내 하늘에 도달했을 때, 독자는 놀라운 반전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 반전은 이 이야기 전체의 철학적 메시지를 함축하며, 독자로 하여금 ‘세계는 어떤 구조를 가지고 있는가’라는 오래된 질문을 다시 던지게 만듭니다.
테드 창은 이처럼 <바빌론의 탑>을 통해 인간이 지닌 끝없는 호기심과 탐구 본능, 그리고 그로부터 파생되는 과학과 철학, 신화와 현실 사이의 긴장관계를 정교하게 엮어냅니다. 이 작품은 짧지만 밀도 있는 구조로 구성되어 있으며, SF 장르의 형식을 빌리면서도 고대 우주론과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한 사유를 함께 녹여낸 탁월한 단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신화적이며 과학적이고, 고대와 현대를 아우르는 작품

<바빌론의 탑>은 현대 SF 단편 중에서도 가장 찬사를 받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 테드 창은 이 작품에서 처음으로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알렸고, 단 한 편으로도 SF계에서 독보적인 평가를 얻었습니다. 특히 이 소설은 단편이 갖는 제약을 뛰어넘어, 독자에게 깊은 철학적 사유와 감각적인 세계관을 전달하는 데 성공한 작품입니다.
첫째, 이 소설은 고전 신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면서도, 거기에 과학적 상상력을 정교하게 결합합니다. 보통 <바벨탑> 이야기는 인간의 오만함과 신의 응징이라는 종교적 메시지로 해석됩니다. 그러나 테드 창은 그런 도덕적 교훈보다, 인간의 탐구심과 지식 욕구를 긍정적으로 조명합니다. 인간이 신의 영역에 다가가는 것은 교만이 아니라 성장의 한 방식이라는 관점은 매우 신선하게 다가옵니다.
둘째, 세계관 설계가 매우 뛰어납니다. 작가는 중세 우주론이라는 오래된 개념을 현대 독자에게 이해 가능한 방식으로 구성하면서, 동시에 그 안에서 작동하는 물리 법칙과 사회 시스템까지도 그럴듯하게 구성해 냅니다. 천체 운동, 중력, 시간, 공간에 대한 묘사는 실제 과학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전통적 세계관 안에서 완벽하게 작동하는 듯한 착각을 일으킵니다. 이러한 설정은 독자에게 독특한 지적 쾌감을 선사합니다.
셋째, 서사 진행 또한 매우 정교합니다. 주인공 힐룸의 내면 변화는 탑을 오르면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며, 독자는 그의 시선을 통해 점차 이 세계의 진실에 다가가게 됩니다. 마지막에 도달한 ‘천상’은 단순한 공간적 도착이 아니라, 철학적 각성과 세계관의 재구성을 의미하며, 그 순간의 충격은 짧은 분량의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습니다.
무엇보다 <바빌론의 탑>은 ‘이야기’의 힘을 입증합니다. 테드 창은 거대한 이론과 철학적 주제를 거창한 설명 없이도 서사 속에 녹여내며, 독자 스스로 생각하게 만듭니다. 이야기를 다 읽고 난 후에도, 세계는 어떤 구조를 가지고 있는가, 인간의 인식은 어디까지 가능한가, 우리는 무엇을 믿고 살아가야 하는가와 같은 질문이 오래 남습니다.
단점이라면, 일부 독자에게는 이 작품의 세계관이나 설정이 다소 낯설고, 설명이 부족하다고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이 작품이 단순한 서사 이상의 것을 지향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정통 SF의 묘미는 때로 독자 스스로 사고하고 상상하게 만드는 데 있으며, <바빌론의 탑>은 그러한 SF의 미덕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요약하자면, <바빌론의 탑>은 짧지만 깊고, 신화적이면서도 과학적이며, 고대와 현대를 아우르는 명징한 SF입니다. 이 작품은 SF를 단순한 장르 문학이 아닌, 철학적 사유의 수단으로 승화시킨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테드 창 작가 소개

테드 창(Ted Chiang, 1967~ )은 미국의 SF 작가로, 작품 수는 많지 않지만, 발표하는 작품마다 평단과 독자의 극찬을 받는 보기 드문 작가입니다. 그는 대중적 명성보다는 작품의 완성도를 추구하는 작가로 잘 알려져 있으며, 과학, 언어, 철학, 종교를 테마로 한 깊이 있는 단편들로 SF 장르의 경계를 확장해 왔습니다.
테드 창은 뉴욕에서 대만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브라운 대학교에서 컴퓨터 과학을 전공했으며, 현재까지도 IT 업계에서 기술 작가로 일하면서 틈틈이 소설을 집필하고 있습니다. 그는 정규 작가로서 활동하기보다, 오직 쓰고 싶은 이야기가 생겼을 때만 글을 쓰는 작가로 유명합니다. 30년이 넘는 작가 경력에도 불구하고 발표한 작품은 단편과 중편을 포함해 20편이 채 되지 않지만, 그중 상당수가 네뷸러상, 휴고상, 로커스상 등을 수상하며 문학적 가치를 입증받았습니다.
<바빌론의 탑>은 그가 처음 발표한 소설이며,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네뷸러상을 수상하면서 곧장 주목받는 작가로 떠올랐습니다. 이후 그는 <당신 인생의 이야기(Story of Your Life)>라는 작품으로 또 한 번의 도약을 이룹니다. 이 작품은 2016년 영화 <컨택트(Arrival)>로 제작되며 전 세계에 그의 이름을 널리 알렸습니다. 영화의 흥행 이후에도 테드 창은 대중의 주목을 피하고, 여전히 조용히 작가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의 문체는 간결하고 명확하며, 철학적이면서도 감성적입니다. 과학적 개념을 서사에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능력, 짧은 이야기 속에서도 인간의 본질에 대한 깊은 질문을 제기하는 태도는 그를 독보적인 존재로 만듭니다. 많은 독자들은 그의 소설을 읽고 나면, 단순한 감동을 넘어 지적인 전율을 느끼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는 SF라는 장르를 통해 인간 존재의 조건과 인식의 한계를 탐구하고 있으며, ‘과학은 인간을 설명할 수 있는가’, ‘언어는 사고를 어떻게 형성하는가’, ‘기억과 자유의지는 무엇인가’ 같은 주제를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이러한 특성은 SF를 넘어서 문학 그 자체로서의 힘을 지닌다고 평가받습니다.
테드 창은 많은 작품을 쓰는 작가는 아닙니다. 그러나 한 편의 작품만으로도 독자에게 긴 여운과 사유를 남기며, 문학이 줄 수 있는 최고의 경험을 선사하는 작가입니다. <바빌론의 탑>은 그의 시작점이자, 앞으로도 오랫동안 읽히고 해석될 만한 SF의 명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