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인 맥그리거(Wayne McGregor)는 현대무용 안무가이자 예술과 과학,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유기적으로 융합하는 창작자이다. 그는 고전적인 무용의 틀을 과감히 탈피하고, 인지과학, 유전학, 인공지능(AI), 뉴로사이언스 등 다양한 분야의 이론과 실험을 작품에 적극 반영함으로써 현대무용의 지형을 새롭게 재구성해왔다. 특히 그의 작업은 '몸을 통해 사고하고 표현하는 예술'이라는 전통적 관점을 넘어서, 몸 그 자체를 하나의 데이터 시스템으로 바라보는 데에 의의가 있다. 이 글에서는 웨인 맥그리거의 예술적 사고방식과 작업 철학을 세 가지 핵심 키워드인 ‘디지털’, ‘테크놀로지’, ‘바디리서치’를 중심으로 깊이 있게 분석해 본다. 이는 현대무용 창작자뿐만 아니라 인문예술 연구자, 미디어 아티스트, 공연예술 기획자들에게도 중요한 영감을 제공할 것이다.
웨인 맥그리거와 디지털: 움직임의 알고리즘을 설계하는 안무가
웨인 맥그리거는 무용이라는 예술을 디지털 환경과 결합하여 새로운 미학을 창조하는 데 앞장서 왔다. 그는 몸의 움직임을 하나의 ‘데이터셋’으로 바라보고, 이를 분석하고 재구성하는 디지털 알고리즘을 통해 안무를 창작한다. 이러한 작업은 단순히 시각적 특수효과를 추가하는 수준이 아니라, 예술의 본질적 언어 자체를 디지털 코드로 전환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의 대표작 《Atomos》(2013)는 움직임 분석 기술, 웨어러블 센서, 3D 영상 디자인, 실시간 알고리즘 사운드를 통합한 융합예술의 정점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 맥그리거는 10명의 무용수의 움직임을 모션캡처로 실시간 기록하고, 그 데이터를 무대 영상과 조명, 음향으로 확장시킨다. 관객은 무용수의 신체 움직임을 감각적으로 ‘보는 것’을 넘어, 디지털 환경 속에서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더불어 이 작품은 고정된 안무가 아닌, 알고리즘에 따라 변화하는 ‘비선형적 구성’을 특징으로 하여 매 공연마다 다른 감각을 제공한다.
또한 Studio Wayne McGregor에서는 Google Arts & Culture, Intel, IBM Watson과의 협업을 통해 인공지능 기반의 안무 생성 도구 개발에도 착수하였다. 2017년에는 AI가 학습한 수천 개의 움직임 데이터를 활용해 ‘무작위적이지만 유기적인’ 안무 구조를 만들어내는 실험을 선보였다. 이 프로젝트는 예술가가 ‘모든 것을 통제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기술과의 공동 창작이 어떻게 새로운 미학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실증했다.
웨인 맥그리거는 디지털 기술을 단지 도구로서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창작의 방법론 그 자체로 통합하고 있다. 그의 안무에서 디지털은 시각적 장식이 아닌, 창작 사고의 기초 언어이며, 예술과 기술의 경계를 흐리는 새로운 지점으로 자리 잡고 있다.
테크놀로지: 과학과 예술의 융합으로 창작을 확장하다
웨인 맥그리거는 무용을 단지 감각적 경험이 아닌 인지적 체계로 간주한다. 그는 인간의 뇌와 신체 사이의 반응 메커니즘, 유전자 정보, 감정과 신체 반응 간의 상관관계를 과학적으로 연구하고 이를 바탕으로 안무를 설계한다. 이를 가능하게 한 핵심은 그의 폭넓은 융합 연구 네트워크이다.
그는 University College London, Wellcome Trust, Harvard University의 Cognitive Neuroscience Research Lab과 협업하여, 인간의 뇌파, 감정 반응, 근육 신호 등을 분석하는 방식의 창작 방식을 구축해 왔다. 실제로 무용수들이 특정 감정을 경험할 때 뇌가 어떤 방식으로 움직임을 선택하는지에 대한 뉴로사이언스적 접근은, 동작을 '기술'로만 보던 기존 안무 방식과는 완전히 다르다.
그의 작품 《Autobiography》(2017)는 무용수 본인의 유전 정보를 안무에 반영한 실험적 작품으로, 각 무용수의 DNA 서열을 기반으로 하여 그들이 보유한 운동성, 감정 반응, 리듬감 등을 분석하고 그에 맞는 동작 패턴을 구성했다. 이 작업은 안무라는 예술 창작이 생물학적 개체성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강력한 사례였다.
또한, 심박수나 뇌파 측정기를 착용한 무용수의 신체 데이터를 무대 조명이나 사운드 디자인과 실시간으로 연결하여, 작품 전체가 하나의 생체 메커니즘처럼 작동하도록 구성하는 것도 맥그리거의 독특한 방식이다. 관객은 공연을 보는 동시에, 무용수의 ‘신체 내부’를 감각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맥그리거는 테크놀로지를 예술을 위한 서브 시스템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 자체의 구조로 흡수한다. 그의 창작은 과학적 이론과 기술을 기반으로 한, 예술과 테크놀로지의 하이브리드적 융합이자, 예술과 과학이 대화할 수 있는 플랫폼을 무대로 전환하는 시도이다.
바디리서치: 몸을 해석하고, 감정을 구조화하다
웨인 맥그리거의 창작의 핵심은 언제나 '몸'이다. 그러나 그에게 몸은 단지 움직이는 물리적 개체가 아닌, 기억과 감정, 정체성, 사회적 경험이 응축된 총체적 존재이다. 그는 '신체 탐구(body research)'라는 접근을 통해 무용수의 몸을 철학적, 심리적, 생물학적 관점에서 해석하고, 이를 창작의 주체로 세운다.
그는 무용수에게 특정 기억이나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도록 요청하고, 그것을 동작으로 구조화하는 '리서치 기반 창작'을 실시한다. 이 과정에서 무용수는 단순한 수행자가 아닌 '공동 창작자(co-creator)'로 기능하며, 안무가는 이를 해석하고 조합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런 창작 방식은 웨인 맥그리거의 무용이 언제나 생생하고 유기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그는 무용수의 신체적 특성(골격 구조, 가동 범위, 반사 신경 등)을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각 무용수에게 최적화된 동작 언어를 제시한다. 이를 통해 관객은 단체무 속에서도 개별 무용수의 독자적 움직임을 느낄 수 있다. 이는 웨인 맥그리거 작품이 ‘개인의 이야기를 몸으로 말하는 집합적 서사’로 평가받는 이유 중 하나다.
특히 그는 '바디 인텔리전스(body intelligence)' 개념을 강조한다. 이는 몸이 스스로 사고하고 기억하고 선택할 수 있다는 관점으로, 안무가의 지시에 따른 움직임이 아니라, 몸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움직임에 창작의 주도권을 두는 것이다. 이 철학은 무용을 인간 본성의 깊은 차원과 연결시키며, 현대 사회에서의 ‘몸’의 의미를 성찰하게 만든다.
웨인 맥그리거의 바디리서치는 무용이라는 장르를 넘어, 교육, 철학, 심리치료, 장애예술 등 다양한 분야와의 융합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그는 몸의 표현 가능성과 예술적 주체성을 끊임없이 확장하며, 몸 자체를 하나의 '생각하는 도구'로 재정의하고 있다.
웨인 맥그리거는 무용이라는 전통 예술을 디지털과 테크놀로지, 과학적 탐구를 통해 끊임없이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창작자다. 그는 ‘움직임’을 미적 표현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철학적 질문과 과학적 실험을 담아낸 하나의 언어로 발전시켰다. 그의 작업은 인간과 기술, 감성과 데이터, 직관과 알고리즘 사이의 경계를 허물며, 동시대 예술의 확장 가능성을 강력하게 제시하고 있다. 웨인 맥그리거는 단지 뛰어난 안무가가 아닌, ‘예술의 미래’를 설계하는 아키텍트라 할 수 있다. 그가 보여준 창작세계는 무용을 공부하는 이들에게는 새로운 안무 패러다임으로, 예술과 기술의 접점을 찾는 이들에게는 명확한 로드맵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