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상의 나라 이갈리아를 통해 성 역할과 억압에 대해 지적한 소설
2017년 이후, 미국을 시작으로 전 세계적으로 새로운 페미니즘 운동이 퍼져나갔습니다. 여성들이 각자 자신이 당한 성차별과 성폭행을 고발하며 시작된 이 흐름은, 박근혜 정부의 탄핵과 함께 당시 한국을 휩쓸었던 정치적 장이 열리면서 더욱 불타오를 수 있었습니다. <이갈리아의 딸들>은 당시 페미니즘 운동의 주요 무기였던 '미러링'의 기반이 되었던 소설입니다. 남녀의 성적 역할 구조를 역전시켜, 남성에 의해 벌어지던 성 차별적 언행과 행위들을 그대로 '미러링'해 불합리함을 깨닫게 한다는 운동은 성과를 내었습니다만, 반발도 불러오기도 했습니다. '미러링' 방식의 평가는 이 글에서 다루지 않습니다만, 남녀의 사회적 위치를 바꿔 기존 남성 중심의 차별을 효과적으로 비판했던 방식은 <이갈리아의 딸들>에서 제시된 것이었습니다. 저는 대학 때 <이갈리아의 딸들>을 처음 읽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사회적 위치를 바꾼 것만으로 이렇게 억압을 폭로하는 소설이 될 수 있다니, 그 방식의 참신함에 놀랐었죠. 지금 읽어도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작품입니다.
<이갈리아의 딸들 (Egalia’s Daughters)>은 노르웨이 작가 게르드 브란튼베르그(Gerd Brantenberg)가 1977년에 발표한 페미니즘 풍자 소설입니다. 이 작품은 남성과 여성의 사회적 위치가 뒤바뀐 가상의 나라 ‘이갈리아’를 배경으로, 성 역할이 어떻게 구성되고 강화되며, 그 이면에 어떤 억압이 존재하는지를 해학적이면서도 날카롭게 드러냅니다.
소설의 무대인 ‘이갈리아’는 여성 중심 사회입니다. 이곳에서 여성은 ‘훼우도르(Feedor)’라 불리며, 정치, 경제, 사회의 중심 권력을 모두 쥐고 있으며, 남성은 ‘맨우(Manwou)’라 불리며, 가사와 육아를 전담하는 역할로 살아갑니다. 법, 교육, 언어, 관습까지 철저히 여성 위주의 체계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속에서 남성은 사회적 약자로 살아가는 존재로 묘사됩니다.
이야기는 주인공 ‘페트로니우스’라는 소년의 시선을 중심으로 진행됩니다. 페트로니우스는 ‘맨우’로 태어나 사회적으로 여성에게 종속된 위치에 있으며, 그는 가부장의 딸로 살아가는 남성으로서 수많은 제약과 차별에 부딪힙니다. 예를 들어 그는 성인이 되면 ‘펜호’를 착용해야 하며, 이는 여성의 ‘브래지어’에 대한 은유이자 남성의 신체가 어떻게 사회적 통제를 받는지를 상징합니다.
그는 사회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없고, 언제나 외모와 순종을 강요받으며 살아갑니다. 학교 교육에서조차 남성은 철저히 배제되거나 하찮은 존재로 그려지고, 여성의 보조 역할에 머물도록 유도됩니다. 이 같은 묘사는 현실 세계에서 여성이 겪어온 차별을 그대로 남성에게 대입한 방식으로, 독자는 이 역전된 세계를 통해 지금까지 당연시되어 온 젠더 불평등의 구조를 낯설게 인식하게 됩니다.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장치는 바로 ‘언어’입니다. <이갈리아의 딸들>은 단어 하나하나에 젠더의식을 반영하여, 남성 중심 언어에 대한 문제 제기를 시도합니다. 예를 들어, ‘history(역사)’를 ‘herstory’로 바꾸거나, ‘man’이 들어간 단어를 여성 중심으로 개조하는 등, 언어를 통해 성차별이 어떻게 구조화되어 있는지를 드러냅니다.
이 소설은 페트로니우스가 ‘남성 해방 운동’을 벌이기 시작하면서 극적인 전환점을 맞습니다. 그는 이갈리아 사회에서 남성도 존중받고, 동등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며, 동료들과 함께 저항의 목소리를 높입니다. 이는 현실에서의 여성운동의 패러디이자 반전으로서, 독자에게 불편함과 통찰을 동시에 제공하는 장치로 작용합니다.
결국 <이갈리아의 딸들>은 웃음을 유발하는 유쾌한 소설이지만, 그 이면에는 성 역할의 본질과 불평등에 대한 날카로운 문제의식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단순한 페미니즘 소설이 아니라, 젠더 관념의 구조 자체를 전복시키는 혁신적인 사고 실험이며, 우리 사회의 성별 고정관념을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남녀 관계 역전을 통해 현실 사회의 성 불평등을 고발한 소설
<이갈리아의 딸들>은 출간 이후 유럽을 중심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작품이며, 1970년대 이후 페미니즘 문학의 주요 고전으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특히 이 작품은 젠더 권력의 전복을 문학적 실험을 통해 구현함으로써, 독자에게 기존의 성 역할 인식을 재구성하도록 유도합니다. 이러한 방식은 단순한 이념 전달을 넘어, 독자의 무의식 속에 잠재된 고정관념을 직접적으로 건드리는 강력한 효과를 만들어냅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문학적 성취는 ‘풍자’입니다. 작가는 남성 중심 사회의 구조와 관습을 여성 중심 사회로 완전히 뒤집음으로써, 기존 사회의 부조리를 고스란히 드러냅니다. 특히, 남성의 억압된 위치를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도 과장과 희화를 활용하여 유쾌하게 전달함으로써, 메시지를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설득력 있게 전달합니다.
또한 이 소설은 언어의 권력 구조에 대한 문제 제기를 강력히 제시합니다. 언어는 단순한 소통의 수단이 아니라, 권력 관계를 규정하고 사회적 인식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강조합니다. ‘man’을 중심으로 구성된 수많은 단어가 어떻게 여성을 배제하고 있는지를, 작가는 정반대의 방식을 통해 드러냅니다. 예컨대, 여성 중심 언어를 인위적으로 구성함으로써 언어 속에서의 젠더 편향을 새삼스럽게 인식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등장인물들의 설정 역시 현실 사회의 불평등을 효과적으로 반영합니다. 주인공 페트로니우스는 여성 중심 사회에서 ‘다수에 속하지 못하는 자’의 시선을 통해 세계를 바라보며, 독자는 그를 통해 차별의 감정과 억압의 구조를 체험하게 됩니다. 이는 곧 현실에서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차별을 전이적으로 경험하게 만들며, 이 소설이 단순한 픽션이 아님을 깨닫게 해 줍니다.
<이갈리아의 딸들>은 또한 교육적 기능을 갖춘 소설로 평가받습니다. 젠더 교육, 성평등 인식 개선, 비판적 사고 훈련 등 다양한 교육적 영역에서 활용될 수 있으며, 특히 청소년 및 대학생 독자들에게 성 인식의 틀을 새롭게 구성하는 계기를 제공합니다. 실제로 유럽과 북미의 여러 대학에서는 이 작품을 페미니즘 입문서로 채택하고 있으며, 수업과 토론의 중심 텍스트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비판적인 관점에서는, 소설의 설정이 지나치게 극단적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모든 권력이 여성에게 집중된 구조가 현실과 괴리가 있다는 지적이지만, 이러한 비판은 오히려 작품의 풍자 구조를 오해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작가는 극단적 설정을 통해 기존 현실을 날카롭게 비추는 ‘거울’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이 비현실성이야말로 독자에게 충격과 각성을 유도하는 장치로 작용합니다.
종합적으로 <이갈리아의 딸들>은 젠더 담론을 쉽고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 성공한 문학 작품입니다. 그것은 단지 성별 권력의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고, 인간이 만들어 낸 ‘정상성’이란 개념 자체에 의문을 던지는 작품이며, ‘만약’이라는 상상을 통해 우리가 사는 세계의 진실을 날카롭게 파헤치는 문제작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변화의 촉매 역할을 수행하는 이 작품은 모든 세대에게 권할 만한 필독서로 남아 있습니다.
1970년대 북유럽 페미니즘 문학 운동을 이끈 작가, 게르드 브란튼베르그
게르드 브란튼베르그(Gerd Brantenberg, 1941~ )는 노르웨이 출신의 페미니스트 작가이자, 사회운동가, 교사입니다. 그녀는 1970년대 북유럽의 페미니즘 문학 운동을 이끌었던 대표적 인물 중 하나로, 특히 <이갈리아의 딸들>을 통해 국제적으로 주목받으며, 성평등과 젠더 문제를 문학의 장으로 끌어낸 선구자적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브란튼베르그는 노르웨이 프레드릭스타에서 태어났으며, 오슬로대학교에서 문학과 심리학을 공부하였습니다. 젊은 시절부터 성차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져왔고, 여성 권익 향상을 위한 사회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그녀는 대학 졸업 후 교사로 활동하면서, 교육 현장에서 체감한 성 불평등 구조를 문학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게 되었고, 그 결과가 바로 <이갈리아의 딸들>입니다.
<이갈리아의 딸들>은 그녀의 첫 장편소설이자 대표작으로, 작가의 문제의식과 문학적 실험이 집약된 작품입니다. 당시 보수적이었던 노르웨이 사회에서 이 작품은 논쟁을 불러일으켰지만, 동시에 페미니즘 담론을 대중적으로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브란튼베르그는 문학을 통해 일상 속의 성차별을 드러내고, 독자 스스로 사고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하려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그녀의 문체는 유머와 풍자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그것을 너무 무겁게 강요하지 않으며, 오히려 반전과 상상력을 통해 독자에게 친숙하게 다가갑니다. 이러한 스타일은 페미니즘 문학이 이념적 선동이라는 편견을 벗어나, 창조적이고 예술적인 시도로 확장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브란튼베르그는 작가 활동 외에도 다양한 사회운동에 참여하였으며, 성소수자 인권 운동, 노동자 권리 신장, 교육 평등 운동 등 여러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했습니다. 그녀는 여성의 목소리를 정치와 문화의 중심으로 끌어내기 위해 다양한 강연과 세미나에 참여하였고, 문학을 넘어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의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녀는 <이갈리아의 딸들> 이후에도 여러 편의 소설과 에세이를 발표하며 문학 활동을 이어갔으며, 특히 여성의 일상, 노동, 사회적 역할에 대한 문제를 꾸준히 다루어 왔습니다. 브란튼베르그는 문학이 단순한 이야기 전달을 넘어, 사회를 변화시키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지녔고, 그녀의 작품은 그 믿음의 실현이자 증거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그녀는 북유럽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페미니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인정받고 있으며, <이갈리아의 딸들>은 수십 개 언어로 번역되어 각국에서 읽히고 있습니다. 그녀의 삶과 작품은 성별 이분법적 사고에 균열을 내고, 인간이 보다 평등하게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는 데 기여해 왔습니다.
게르드 브란튼베르그는 여전히 ‘문학은 행동이다’라는 철학 아래, 글쓰기를 통한 사회 변화에 힘쓰고 있으며, 그녀가 남긴 유산은 앞으로도 페미니즘과 사회문학 분야에서 오랫동안 기억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