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이 추구해야 할 합리적 사회 질서를 제시한 사상서
'유토피아'라는 단어는 옛날부터 사람들의 마음을 뛰게 만들었습니다. 현실이 시궁창인만큼, 이상적인 사회를 꿈꾸는 사람들의 열망은 강해졌죠. 18세기말, 19세기 초의 공산주의 이상 사회에 대한 상상도 근대 전체주의 왕정과 산업혁명의 모순을 개혁하고자 하는 희망에서 나온 것이겠죠. 저도 어릴 때 유토피아를 꿈꾸긴 했습니다. 저는 어릴 때 무릉도원 이야기를 듣고 그곳을 유토피아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유토피아(Utopia)>는 영국의 인문주의자 토머스 모어(Thomas More)가 1516년에 발표한 정치·사회철학서로, ‘이상 사회’를 의미하는 단어 ‘유토피아’의 어원을 제공한 작품입니다. 이 책은 르네상스 시대의 인문주의 정신을 바탕으로, 당시 유럽 사회의 부패와 불평등을 비판하고, 인간이 추구해야 할 합리적 사회 질서를 제시한 사상서로 평가받습니다. 제목의 ‘유토피아’는 그리스어 ou-topos(존재하지 않는 곳)와 eu-topos(좋은 곳)의 중의적 의미를 담고 있어, 이상 세계가 실현 불가능한 동시에 인간이 끊임없이 추구해야 할 목표임을 상징합니다. 이 작품은 단순한 정치철학이 아니라,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통찰과 현실 비판을 담은 르네상스 인문주의의 결정체입니다.
<유토피아>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제1부에서는 당시 유럽, 특히 영국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비판하고, 제2부에서는 가상의 이상 사회 ‘유토피아 섬’의 제도와 생활을 자세히 묘사합니다.
제1부는 모어가 네덜란드의 학자 에라스무스(Erasmus)의 친구로서 인문주의적 대화를 나누던 시기의 사상적 분위기를 반영합니다. 그는 가상의 인물인 라파엘 히슬로다에우스(Raphael Hythlodaeus, ‘허튼소리를 하는 자’라는 뜻)를 등장시켜, 현실 세계의 부패와 폭정을 비판하게 합니다. 라파엘은 영국의 사회 구조를 신랄하게 비판하며, 특히 당시 확산되던 인클로저 운동(Enclosure Movement)으로 인해 농민이 땅을 잃고 가난해지는 현실을 고발합니다. 그는 “양들이 사람을 잡아먹는다”라고 말하며, 부의 집중과 사유재산 제도가 인간의 도덕을 타락시킨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서사는 단순한 풍자가 아니라, 사회 정의와 인간 행복의 본질에 대한 문제 제기로 읽힙니다.
제2부에서는 라파엘이 여행 중 발견한 이상 사회 ‘유토피아’의 정치·경제·사회 체계를 자세히 설명합니다. ‘유토피아’는 소유 개념이 없는 공동체 사회로, 모든 재산은 공동의 소유이며, 노동은 사회 구성원 모두가 균등하게 분담합니다. 하루 노동 시간은 6시간으로 제한되어 있고, 그 외의 시간은 학문과 예술, 교양을 위해 사용합니다. 지도자는 투표를 통해 선출되며, 법은 간결하고, 사치와 권력 다툼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종교의 자유도 보장되며, 시민들은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생활합니다.
이러한 사회는 철저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질서로 운영됩니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의 본성과 감정이 억제된 사회로도 그려집니다. 개인의 욕망은 통제되고, 자유로운 상상보다는 공동체의 조화가 우선합니다. 이는 토머스 모어가 추구한 인문주의적 이상이면서도, 인간의 복잡한 본성에 대한 회의가 함께 담긴 이중적 구조를 보여줍니다.
결국 <유토피아>는 완전한 이상 사회를 제시하기보다, 현실 사회의 모순을 비추는 ‘거울’의 역할을 합니다. 모어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통해 현실의 부조리를 더 선명히 드러내며, 독자에게 “진정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고전적 교양과 기독교적 윤리를 결합해 이상적인 사회를 탐구한 책
<유토피아>는 르네상스 인문주의의 핵심 정신을 가장 명확하게 구현한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토머스 모어는 고전적 교양과 기독교적 윤리를 결합해, 인간 사회의 이상적 형태를 탐구했습니다. 그는 인간이 합리적 존재임을 믿었으며, 탐욕과 권력욕이 제거된다면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가 가능하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상주의자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의 ‘유토피아’는 냉철한 현실 인식 위에서 출발하며, 현실을 고발하기 위한 비판적 장치로 작동합니다.
이 작품의 문학적 특징은 대화체 형식을 통한 철학적 논증입니다. 모어는 직접적인 교훈을 제시하기보다, 라파엘과의 대화를 통해 현실과 이상을 대비시킵니다. 이를 통해 독자가 스스로 사고하게 만드는 점에서 <유토피아>는 단순한 이상사회론이 아니라 ‘사유의 실험장’으로 기능합니다. 또한 풍자적 요소가 강하게 녹아 있어, 겉으로는 이상 사회를 묘사하지만, 그 이면에는 인간의 본성과 사회 제도에 대한 냉철한 회의가 깔려 있습니다.
비평가들은 이 작품을 두 가지 시선으로 봅니다. 하나는 인문주의적 이상주의로서의 ‘사회 개혁의 청사진’, 또 하나는 현실 사회를 비판하기 위한 ‘아이러니적 풍자’입니다. 실제로 ‘유토피아’라는 단어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곳’을 뜻한다는 점은, 토머스 모어가 인간 사회의 완전함을 불가능하다고 인식했음을 보여줍니다. 즉, 그는 ‘이상’이 현실화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이상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도덕적 의무를 강조했습니다.
철학적으로 <유토피아>는 플라톤의 <국가>와 깊은 연관성을 지닙니다. 플라톤이 이성의 통치를 주장한 것처럼, 모어 역시 인간 사회가 이성적 질서에 의해 운영되어야 한다고 봤습니다. 하지만 그는 플라톤보다 한층 더 현실적이며, 인간의 결함을 인정하는 태도를 보입니다. 이 점이 <유토피아>를 단순한 철학서가 아닌 문학적 걸작으로 만든 이유입니다.
오늘날 <유토피아>는 정치철학, 사회학, 경제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여전히 인용되며, 현대 사회의 이념 논쟁 속에서도 자주 거론됩니다. 자본주의, 사회주의, 공동체주의 등 여러 사상의 뿌리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특히 불평등과 인간성의 위기가 심화된 오늘날, 모어의 문제의식은 여전히 유효하며, <유토피아>는 “진정한 인간다운 사회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고전으로 남아 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지성인, 토머스 모어
토머스 모어(Thomas More, 1478~1535)는 영국의 정치가이자 인문주의 철학자, 그리고 가톨릭 성인으로,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지성인입니다. 그는 ‘양심의 사람’으로 불리며, 현실 정치와 도덕적 신념 사이에서 끝까지 자신의 믿음을 지킨 인물로 기억됩니다.
모어는 런던에서 법률가의 아들로 태어나 옥스퍼드에서 고전학을 공부했습니다. 이후 법학을 전공하고, 영국의 법원에서 활동하며 정치가로 성장했습니다. 그의 지적 배경은 고대 철학과 기독교 윤리를 결합한 르네상스 인문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었습니다. 그는
인간의 이성과 도덕성을 신뢰했고, 교육과 정의를 통해 사회를 개혁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Erasmus)와 깊은 우정을 나누며, 고대 문헌의 복원과 인문정신의 확산에 기여했습니다. 에라스무스가 그를 “가장 양심적이고 지혜로운 사람”이라 부른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사상적 교류 속에서 1516년, 모어는 자신의 대표작 <유토피아>를 라틴어로 집필하여 출간했습니다. 이 작품은 곧 유럽 전역에 큰 반향을 일으키며, 사회개혁 사상의 원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정치적으로 그는 영국 국왕 헨리 8세의 신임을 받아 ‘대법관(Lord Chancellor)’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헨리 8세가 교황청과 결별하고 국교회를 세우며 자신의 이혼을 정당화하려 하자, 모어는 신앙과 양심을 이유로 이에 반대했습니다. 그는 권력보다 양심을 선택했고, 결국 1535년 ‘국왕에 대한 불충’ 혐의로 참수형을 당했습니다. 처형 직전 그는 “나는 왕의 충신이지만, 하느님의 종으로서 더 충성스럽다”라고 말하며 신앙적 신념을 끝까지 지켰습니다.
토머스 모어는 죽은 뒤 순교자로 인정되어, 1935년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성인으로 시성되었습니다. 그는 단순한 이상주의자가 아니라, 현실 속에서도 신념을 실천한 ‘윤리적 인간’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그는 양심의 자유와 도덕적 용기의 상징으로, 정치·종교·철학 영역에서 깊은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유토피아>는 인간이 꿈꾸는 이상 사회를 그린 동시에, 현실의 부조리를 날카롭게 비추는 거울입니다. 토머스 모어는 이 작품을 통해 단순히 “이상적인 나라”를 묘사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탐욕과 사회의 불평등을 반성하게 하는 철학적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는 이상이 실현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이상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유토피아>는 지금도 “더 나은 사회는 가능한가?”라는 영원한 질문을 던지며, 시대를 넘어 인간 정신의 나침반으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