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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적 미의 극치라고 평가받는 소설, <슌킨 이야기>

by beato1000 2025. 10. 17.

슌킨 이야기 표지
<슌킨 이야기>

 

 

아름다움과 복종, 집착이라는 주제를 통해 인간 감정을 탐구한 걸작 소설

다니자키 준이치로(谷崎潤一郎 / Tanizaki Jun’ichirō)의 소설 <슌킨 이야기(春琴抄)>는 일본 문학사에서 가장 섬세하고도 강렬한 사랑의 서사로 꼽힙니다. 1933년에 발표된 이 작품은 아름다움, 복종, 집착이라는 주제를 통해 인간 감정의 심연을 탐구한 걸작으로 평가받습니다.
이야기는 에도 시대 오사카를 배경으로, 명문 상인의 딸이자 맹인 여성인 슌킨과 그녀의 충실한 하인 사스케의 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슌킨은 어려서 시력을 잃었지만, 음악적 재능이 뛰어나 샤미센 연주자로 명성을 얻습니다. 그녀는 교양과 품격을 갖춘 인물이지만, 동시에 자존심이 매우 강하고 타인을 지배하려는 성향을 지닌 인물로 그려집니다. 사스케는 어릴 적부터 슌킨을 모셔온 하인으로, 그녀를 주인으로서뿐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깊이 사랑합니다.
두 사람의 관계는 단순한 주종 관계를 넘어, 점차 서로의 존재를 통해 완성되는 독특한 결합으로 발전합니다. 슌킨은 사스케의 헌신을 당연하게 여기며 그를 혹독하게 대하지만, 그 속에는 자신이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없다는 결핍에서 비롯된 불안과 의존이 숨어 있습니다. 사스케는 그런 슌킨의 냉혹함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그녀의 고통을 함께 짊어지는 삶을 택합니다.
이야기의 절정은 슌킨이 괴한의 습격을 받아 얼굴을 심하게 다치는 장면에서 찾아옵니다. 그 순간 그녀는 자신이 잃어버린 ‘아름다움’ 때문에 절망하고, 세상 앞에 설 수 없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사스케는 그 상처받은 얼굴조차 사랑하며, 그녀가 다시는 자신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도록 스스로의 두 눈을 찔러 실명합니다. 이제 그들은 서로의 어둠 속에서 완전히 하나가 됩니다.
이 충격적인 결말은 단순한 비극이 아니라, 두 사람이 외부 세계의 시선에서 완전히 벗어나 ‘절대적 사랑’의 상태에 이르렀음을 상징합니다.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이를 통해 시각의 부재를 ‘내면의 순수성’으로, 육체의 결합을 ‘정신적 완전성’으로 변환시킵니다.
이 작품은 1인칭 서술자의 ‘기록문’ 형태로 쓰였으며, 실제 존재한 인물의 전기를 읽는 듯한 현실감을 주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러나 사실상 이 이야기는 전설과 허구, 그리고 예술적 상징이 교차하는 구조로 짜여 있습니다. 독자는 마치 옛 일본의 정서 속에서, 한 편의 비극적인 전기문학을 읽는 듯한 감각을 얻게 됩니다.
결국 <슌킨 이야기>는 인간이 사랑이라는 감정 속에서 얼마나 깊은 집착과 파괴를 동시에 품을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아름다운 사랑이 아니라, 인간이 추구하는 절대적 미와 그 어두운 그림자를 모두 담아낸 비극적 명상입니다.

 


인간의 욕망과 미적 감각이 어떻게 결합하는지 집요하게 탐구한 작품

<슌킨 이야기>는 다니자키 준이치로 문학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일본 근대문학의 미학을 대표합니다. 발표 당시부터 이 소설은 “잔혹할 만큼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이후 일본 내에서 수차례 영화와 연극으로 재해석되었습니다.
비평가들은 이 작품을 “미(美)에 대한 종교적 신념이 낳은 문학적 의식”으로 해석합니다. 다니자키는 이 소설에서 인간의 욕망과 미적 감각이 어떻게 결합하는지를 집요하게 탐구했습니다. 슌킨과 사스케의 관계는 단순한 연애나 주종 관계를 넘어서, ‘미의 숭배’라는 차원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슌킨은 아름다움을 통해 세상을 지배하고자 했고, 사스케는 그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시력을 희생했습니다. 그들의 사랑은 현실적이라기보다, 일종의 미학적 의식행위로 그려집니다.
또한 이 작품은 다니자키 문학이 서구 근대성과 일본 전통미 사이에서 찾은 절충점을 잘 보여줍니다. 초기 작품에서 서구적 에로티시즘과 모더니즘에 탐닉했던 그가, <슌킨 이야기>를 통해 일본의 고유한 미의식—특히 ‘은폐의 미학’—으로 회귀한 점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는 아름다움이란 빛나는 것보다 ‘숨겨진 것’, ‘보이지 않는 것’ 속에서 더 깊이 존재한다고 보았습니다.
이 작품의 문체 역시 다니자키 특유의 고전적 품격과 세련된 감각이 결합되어 있습니다. 겉보기에는 담담하고 정제된 서술이지만, 그 속에는 관능과 긴장이 서려 있습니다. 슌킨과 사스케의 감정선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작은 몸짓과 침묵 속에서 폭발하는 듯한 감정이 느껴집니다. 이 절제된 묘사야말로 다니자키 문학의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슌킨 이야기>는 또한 ‘보지 않음’의 의미를 철학적으로 탐구합니다. 시각의 상실은 단순한 신체적 결핍이 아니라, 세속적 가치와 욕망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상징적 행위로 읽힙니다. 사스케가 눈을 잃는 장면은 인간이 외부 세계의 시선에서 해방되어 내면의 절대적 세계로 들어가는 문턱을 의미합니다. 다니자키는 그 어둠 속에서야 비로소 순수한 사랑이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문학적 완성도 면에서도 <슌킨 이야기>는 일본 근대 단편소설의 정점 중 하나로 꼽힙니다. 인물의 심리, 공간의 분위기, 언어의 리듬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며, 독자는 한 편의 정교한 예술품을 감상하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오늘날까지도 이 작품은 ‘일본적 미의 극치’로 평가받으며, 다니자키의 미학이 가장 농밀하게 드러난 텍스트로 남아 있습니다.

 


관능적 아름다움과 인간의 욕망을 탐구한 작가, 다니자키 준이치로

다니자키 준이치로(谷崎潤一郎 / Tanizaki Jun’ichirō, 1886~1965)는 일본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거장으로, 관능적 아름다움과 인간의 욕망을 정교하게 탐구한 작가입니다. 그는 서구적 근대성과 일본 전통미의 긴장 속에서 독자적인 미학 세계를 구축하며, 일본 문학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도쿄의 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문학과 예술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도쿄제국대학 재학 중 문단에 데뷔했으며, 초기에는 에드거 앨런 포, 오스카 와일드, 보들레르 등 서구 문학의 영향을 받아 관능적이고 퇴폐적인 세계를 그렸습니다. 대표작 <문신>, <치인의 사랑> 등은 그 시기의 성향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1923년 관동대지진 이후 그는 서구적 미의 추구에서 벗어나, 일본 전통문화의 깊이와 절제미로 관심을 돌리게 됩니다.
이 시기에 발표된 <슌킨 이야기>, <열쇠>, <세설> 등은 ‘일본적 미’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평가됩니다. 그는 특히 ‘어둠 속의 아름다움’이라는 미학적 개념을 탐구하며, 서양의 노출된 미학에 대항하는 동양적 미의 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그의 수필 <음예예찬(陰翳礼讃)>은 이런 사상을 철학적으로 정리한 대표적인 글로, 오늘날까지도 미학과 디자인 분야에서 자주 인용됩니다.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문학은 겉으로는 세련된 서술을 유지하지만, 그 속에는 인간의 본능, 성적 욕망, 그리고 지배와 복종의 심리가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그는 인간 내면의 어두운 욕망을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예술적 아름다움으로 승화시켰습니다. 이런 점에서 그는 단순한 에로티시스트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근원적 모순을 미학적으로 형상화한 철학자적 작가라 할 수 있습니다.
준이치로는 생애 후반에도 꾸준히 창작 활동을 이어가며 일본문학대상, 문화훈장 등을 수상했습니다. 일본 국내뿐 아니라 서구 문학계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으며, 그의 작품은 다수의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 독자에게 읽히고 있습니다.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인간의 욕망과 미의식을 탐구한 작가로서, 동서양을 아우르는 보편적 감각을 지닌 인물입니다. 그의 작품은 시대를 초월해 여전히 현대적이며, <슌킨 이야기>는 그가 구축한 ‘어둠 속의 아름다움’이라는 미학이 가장 완벽하게 구현된 대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