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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근대문학의 '감정의 혁명'을 담은 작품, <기러기>

by beato1000 2025. 10. 28.

기러기 표지
<기러기>

 

 

 

일본 근대문학의 정점에 위치한 서정 소설

모리 오가이(森鴎外)의 <기러기(雁)>는 1911년에 발표된 작품으로, 일본 근대문학의 정점에 위치한 서정 소설입니다. 제목의 ‘기러기’는 가을 하늘을 가로지르는 새이자, 인간의 자유와 그리움, 이별의 상징으로 등장합니다. 이 작품은 메이지 시대 도쿄를 배경으로, 한 여인의 외로운 삶과 그녀가 품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섬세하게 묘사합니다. 표면적으로는 단순한 삼각관계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는 신분과 제도의 억압, 근대화 속에서 길을 잃은 개인의 정서가 깊이 스며 있습니다.
이야기는 내러이터인 의대생 오카다(岡田)의 회상으로 시작합니다. 오카다는 학비를 벌기 위해 고학하는 젊은 학생으로, 도쿄의 요쓰야 근처를 오가며 매일 같은 길로 학교를 다닙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길가의 2층 창문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한 여인의 시선을 느낍니다. 그 여인은 다카노 오타마(高野お玉)로, 은행원 스에즈미(末造)의 첩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녀는 스에즈미에게 경제적 의존을 하며 안정된 생활을 유지하지만, 사랑 없는 삶 속에서 깊은 공허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오타마는 창문을 통해 매일 오가는 오카다를 몰래 바라보며, 그를 ‘자유의 상징’으로 여깁니다. 오카다는 그녀의 존재를 어렴풋이 느끼지만, 특별히 인식하지 못한 채 자신의 일상에 몰두합니다. 그러나 독자는 그녀의 시선을 통해 ‘보는 자와 보이지 않는 자’의 관계, 그리고 일방적인 사랑의 구조를 깨닫게 됩니다.
이 작품의 핵심은 바로 이 ‘시선의 교차’입니다. 오타마의 삶은 갇힌 새처럼 제한된 공간 안에 존재합니다. 그녀는 사회적 관습과 남성 중심의 구조 속에서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없습니다. 그녀가 오카다에게 느낀 감정은 단순한 연정이 아니라, 자신이 잃어버린 자유와 인간 존엄에 대한 갈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오카다는 그녀의 존재를 인식하기도 전에 졸업과 함께 도쿄를 떠나고, 오타마는 남겨집니다.
이별의 순간, 창문에서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은 작품의 가장 아름답고도 슬픈 장면을 만들어냅니다. 그 순간 하늘 위로 한 떼의 기러기가 날아오릅니다. 오가이는 그 기러기의 이미지를 통해 ‘이루어질 수 없는 자유의 비상’을 상징화합니다. 오타마의 마음은 하늘을 향하지만, 그녀의 현실은 여전히 땅에 묶여 있습니다.
<기러기>는 단순한 연애소설이 아닙니다. 그것은 메이지 근대화의 이면에서, 인간이 제도와 도덕, 신분의 굴레 속에서 어떻게 소외되는지를 보여주는 사회적 기록이자 정서적 초상화입니다. 오가이는 감정의 폭발보다는 절제된 시선으로 여인의 내면을 그려냅니다. 모든 감정이 직접적으로 표현되지 않지만, 오타마의 작은 움직임, 창문을 여는 손길, 하늘을 바라보는 눈빛 하나하나에 깊은 비애가 스며 있습니다.
이 소설의 미학은 ‘말하지 않는 것’에 있습니다. 오가이는 침묵과 여백 속에서 인간 감정의 본질을 드러냅니다. 바로 그 절제된 서정성 때문에 <기러기>는 지금까지도 일본 근대문학의 걸작으로 남아 있습니다.

 


서구적 근대성과 일본적 서정성이 완벽하게 융합된 독특한 미학을 완성한 작품

<기러기>는 일본 근대문학의 ‘감정의 혁명’을 보여준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모리 오가이는 서구 근대 문학의 사실주의 기법을 받아들이면서도, 일본 고유의 정서인 ‘모노노아와레(もののあはれ, 사물의 덧없음)’를 섬세하게 결합했습니다. 그 결과, 이 작품은 서구적 근대성과 일본적 서정성이 완벽하게 융합된 독특한 미학을 완성했습니다.
비평가들은 <기러기>를 ‘근대 일본의 내면 발견’으로 평가합니다. 이전의 일본 문학이 사회나 도덕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면, 이 작품은 개인의 감정과 자아의 내면 세계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오타마는 단순한 첩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자유와 사랑을 갈망하는 존재로 그려집니다. 그녀의 시선은 단지 한 남자를 향한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존재를 회복하고 싶은 욕망’을 상징합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은 ‘절제된 표현’입니다. 오가이는 직접적인 감정 묘사를 거의 하지 않습니다. 대신 공간의 묘사, 계절의 변화, 빛과 그림자의 대비를 통해 인물의 심리를 암시합니다. 예를 들어, 오타마가 처음 창문을 열고 밖을 바라보는 장면은 단순한 행위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그녀가 세상과 다시 관계를 맺고자 하는 시도의 상징입니다.
또한 ‘기러기’라는 상징은 일본 문학사에서 가장 아름답게 해석된 이미지 중 하나로 꼽힙니다. 기러기는 철새로서 떠남과 귀환, 자유와 그리움을 모두 품고 있는 존재입니다. 오가이는 이를 통해 인간의 감정이 지닌 양가성을 표현했습니다. 오타마의 사랑은 아름답지만 동시에 비극적이며, 그녀의 자유에 대한 열망은 높이 날지만 결국 현실에 가로막힙니다.
문체 또한 정교하고 세련되어 있습니다. 오가이의 문장은 시처럼 리듬감 있고, 묘사와 대화의 균형이 절묘합니다. 그는 인물의 내면을 직접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독자가 그 마음을 ‘느끼게’ 만드는 힘을 지녔습니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훗날 다니자키 준이치로, 가와바타 야스나리 같은 작가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문학사적으로 볼 때, <기러기>는 ‘근대 일본 여성상’을 새롭게 정의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오타마는 희생적이거나 순종적인 전통적 여성상이 아닙니다.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비록 그것을 실현할 수 없더라도 내면적으로 성장합니다. 그런 점에서 그녀는 일본 근대 여성의 자각을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또한 이 작품은 도시 소설로서의 가치도 높습니다. 오가이는 도쿄의 거리, 건물, 하늘, 계절의 빛을 섬세하게 포착하며, 근대 도시의 정서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했습니다. <기러기> 속의 도쿄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물의 감정을 반사하는 거울처럼 작용합니다.
결국 <기러기>는 시대를 초월한 보편성을 지닌 작품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자유, 사랑, 고독, 그리고 그 감정의 불완전함을 깊이 탐구한 이야기입니다. 오늘날의 독자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이유는, 오타마의 내면이 100년이 지난 지금도 ‘현대인의 고독’과 닮아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 근대문학의 선구자이자 지식인, 모리 오가이

모리 오가이(森鴎外, 1862~1922)는 일본 근대문학의 선구자이자 지식인으로, 의사, 군인, 번역가, 평론가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약했습니다. 본명은 모리 린타로(森林太郎)이며, 메이지 시대 일본의 서구화 과정 속에서 ‘지성의 상징’으로 불렸습니다. 그는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와 더불어 일본 근대 문학을 대표하는 인물 중 한 사람입니다.
모리 오가이는 시마네현 쓰와노(津和野) 출신으로,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학업 성취를 보였습니다. 열네 살에 의학을 공부하기 위해 도쿄로 상경했고, 훗날 독일로 유학을 떠나 근대 의학과 문화를 접했습니다. 독일에서 체류하던 시절, 그는 괴테와 하이네 등 독일 문학의 영향을 깊이 받았으며, 이후 그의 작품 세계에는 서구적 합리성과 일본적 정서가 절묘하게 융합되었습니다.
귀국 후 그는 군의관으로 활동하며 문학 활동을 병행했습니다. 그의 초기 작품인 <무희(舞姫)>는 실존적 사랑과 개인의 자유를 다룬 자전적 소설로, 일본 문단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후 그는 번역가로서 셰익스피어, 입센, 괴테 등의 작품을 일본어로 옮기며 서구 문학의 도입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기러기>는 그의 중기 대표작으로, 인간 내면의 정서와 사회적 제약 사이의 긴장을 섬세하게 그려낸 걸작입니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감정의 미학’을 완성했으며, 현실과 이상, 사회와 개인의 갈등을 철학적으로 탐구했습니다.
문학 외에도 그는 근대 일본의 위생 정책을 주도한 군의관으로, 일본 의학사에서도 중요한 인물로 평가됩니다. 그러나 그의 내면은 언제나 문학에 향해 있었고, 그는 과학과 예술, 이성과 감성의 균형을 추구한 지식인이었습니다.
모리 오가이의 문학은 ‘지성의 문학’이라 불립니다. 감정의 절제, 언어의 정확성, 그리고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이 공존합니다. 오가이는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면서도 감상주의에 빠지지 않았고, 시대의 변화 속에서 인간 존재의 보편적 진실을 찾고자 했습니다.
모리 오가이의 영향은 이후 일본 문학 전반에 뚜렷하게 남았습니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가와바타 야스나리, 다니자키 준이치로 등은 모두 오가이의 작품 세계에서 문학적 영감을 얻었습니다.
모리 오가이는 생애 후반에도 비평과 번역, 역사소설 등 다양한 장르에서 왕성하게 활동했습니다. 그는 1922년 도쿄에서 생을 마감했으며, 유언으로 “문학은 진실을 기록하는 행위”라고 남겼습니다. 그의 <기러기>는 그 말의 완벽한 증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오가이는 인간이 시대의 제도 속에서도 ‘자신의 감정으로 살아가는 존재’임을 보여주었고, 그 절제된 슬픔과 서정성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일본 문학의 정수를 대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