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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져 가는 것들에 대한 찬사를 담은 작품, <배를 엮다>

by beato1000 2025. 10. 7.

배를 엮다 표지
<배를 엮다>

 

 

 

 

 사전 편찬 작업을 통해 언어와 소통에 대한 깊은 사유를 담은 작품

<배를 엮다(舟を編む)>는 일본 작가 미우라 시온(三浦しをん, Shion Miura)이 2011년에 발표한 장편소설로, 단어와 언어, 그리고 인간의 소통에 대한 깊은 사유를 담은 작품입니다. 제목의 ‘배를 엮다’는 사전 편찬 작업을 은유한 표현으로, 수많은 단어의 바다를 건너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배, 즉 사전을 만드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입니다. 이 소설은 언어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고독하고 집요한 여정을 통해, 말이라는 것이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세계를 엮는 근본적 매개임을 보여줍니다.
이야기는 대형 출판사 ‘겐부쇼보(玄武書房)’의 편집부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주인공 마지메 미츠야(馬締光也)는 원래 영업부 직원으로, 어딘가 어눌하고 사회적 관계에 서툰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는 언어에 대한 감각이 탁월하며, 단어 하나하나의 미묘한 뉘앙스를 집요하게 탐구합니다. 어느 날 사전 편찬을 담당하는 아라키 상사에게 발탁되어, 새로운 국어사전 <대해(大海)>의 제작에 합류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마지메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사전을 만드는 일은 단순한 편집 작업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단어를 기록하고, 인간의 사고와 감정을 담는 거대한 여정입니다. 마지메는 기존 편집자 니시오카와 함께 수많은 단어를 수집하고 정의하며, 그 의미의 미세한 차이를 두고 열띤 토론을 이어갑니다. 단어의 정확한 의미를 정의하기 위해 고심하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장인들의 세계를 연상시킵니다.
그러나 그들의 여정은 순탄치 않습니다. 새로운 기술의 등장과 시대의 변화 속에서 사전이라는 매체는 점차 구시대적인 것으로 여겨지고, 출판사의 내부에서도 프로젝트는 계속 축소될 위기에 처합니다. 그럼에도 마지메와 동료들은 “언어의 바다를 항해하는 배”라는 신념을 버리지 않습니다. 이 과정에서 마지메는 하숙집 주인의 손녀 ‘카구야’를 만나 사랑을 느끼고, 언어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의 깊이를 체험하게 됩니다.
작품의 후반부에서는 마지메가 수십 년간 공들여온 사전 <대해>가 마침내 완성되는 순간이 그려집니다. 그는 그 성취를 통해 인간의 한계와 동시에 언어의 위대함을 깨닫습니다. 단어는 세상을 설명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인간 존재 자체를 증명하는 도구라는 깨달음입니다.
<배를 엮다>는 단어를 다루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느리고 정직한 세계를 다루지만, 그 속에는 현대 사회에서 점점 잊혀가는 ‘성실함’과 ‘헌신’의 가치가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작품은 언어가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독자에게 ‘말의 힘’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언어의 본질과 인간의 삶을 다룬 소설

<배를 엮다>는 발표 당시 일본 문단에서 큰 주목을 받았으며, 제147회 ‘쇼가쿠칸 문학상(小学館文学賞)’을 수상했습니다. 작품이 보여주는 따뜻한 인간미와 언어 철학은 일본은 물론 해외 독자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이 소설은 언어의 본질을 다루는 동시에, 인간의 일과 사랑, 그리고 존재의 의미를 탐색하는 다층적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언어를 대하는 태도입니다. 미우라 시온은 사전 편찬이라는 특수한 소재를 통해, 단어 하나하나에 깃든 인간의 삶을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사전은 사람과 사람을 잇는 다리”라는 대사는 작품의 핵심 철학을 상징합니다. 언어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이 아니라, 세상과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도구라는 것입니다.
비평가들은 특히 이 작품이 보여주는 ‘일의 존엄성’에 주목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효율성과 속도가 미덕으로 여겨지는 시대에, 마지메와 동료들은 수십 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사전을 만듭니다. 그들의 일은 느리고 고단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인간의 진정성이 빛납니다. 이는 ‘성과 중심 사회’에 대한 조용한 반론으로 읽힙니다.
또한 작품은 인간관계의 미묘한 아름다움을 그립니다. 언어의 세계에 갇혀 있던 마지메가 카구야를 만나 사랑을 배우는 과정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의 힘을 보여줍니다. 그는 단어로 사랑을 정의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오히려 그 모호함 속에서 인간다움을 발견합니다. 이 대목에서 작가는 언어의 한계와 가능성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문학적 구성 면에서도 <배를 엮다>는 높은 완성도를 자랑합니다. 작품의 구조는 단순하지만, 세밀한 언어 묘사와 리듬감 있는 문장이 독자의 몰입을 유도합니다. 미우라 시온은 사전의 언어와 인물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병치시키며, ‘단어’와 ‘사람’이 서로를 반영하는 관계로 설정합니다.
또한 <배를 엮다>는 사전이라는 구체적인 대상 속에서 추상적인 철학을 구현합니다. 언어는 항상 변화하고, 단어의 의미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집니다. 작가는 이런 유동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안에서 진실을 찾으려는 인간의 노력을 아름답게 묘사합니다. 바로 그 점에서 이 소설은 단순한 직업 서사를 넘어선 인문학적 작품으로 자리합니다.
이 작품은 2013년에 영화로도 제작되어 일본 아카데미상을 수상하며 다시 한번 화제가 되었습니다. 영화는 소설의 서정적 분위기를 잘 살려냈으며, 많은 이들이 “사전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이렇게 따뜻하게 그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놀랍다”라고 평가했습니다.
결국 <배를 엮다>는 언어의 본질과 인간의 삶을 함께 다룬 보기 드문 문학작품입니다. 빠른 세상 속에서 말의 의미를 잃어버린 우리에게, “단어 하나에도 진심을 담아야 한다”는 조용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삶의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일깨워주는 작가, 미우라 시온

미우라 시온(三浦しをん, Shion Miura, 1976~ )은 일본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인간 내면의 미묘한 감정과 일상 속의 진실을 따뜻하게 그려내는 작품들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도쿄에서 태어난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책과 언어에 깊은 흥미를 보였으며, 와세다대학교 문학부를 졸업한 후 본격적으로 소설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2000년 단편 「밤의 피아노」로 데뷔한 이후, 그녀는 현실적인 인물들과 진정성 있는 대화를 중심으로 한 서정적 문체로 빠르게 주목받았습니다. 2006년에는 장편소설 <마호로역 앞 다다 심부름집(まほろ駅前多田便利軒)>으로 나오키상(直木賞)을 수상하며 일본 문단의 주류 작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이 작품은 독특한 인간 군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포착한 수작으로 평가받았으며, 이후 드라마와 영화로도 제작되었습니다.
미우라 시온의 작품 세계는 ‘일상의 경이로움’을 포착하는 데 집중합니다. 그녀는 평범한 직업과 인간관계를 소재로 삼아, 그 속에서 드러나는 성실함과 인간애를 섬세하게 탐구합니다. 특히 언어와 소통, 일의 의미, 타인과의 관계에서 오는 고독과 연대는 그녀 문학의 핵심 주제입니다. <배를 엮다>는 그 철학이 가장 아름답게 드러난 작품으로, 언어의 정밀함과 인간 감정의 섬세함이 완벽하게 결합된 예라 할 수 있습니다.
미우라의 문체는 따뜻하면서도 절제되어 있으며, 독자에게 위로와 사유를 동시에 제공합니다. 그녀는 인물을 선악으로 나누지 않고, 각자의 삶 속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담담히 그립니다. 덕분에 그녀의 작품은 세대와 배경을 초월해 공감대를 형성합니다.
또한 미우라 시온은 ‘직업 소설’의 영역을 확장한 작가로 평가받습니다. <배를 엮다>의 사전 편찬자, <풍속>의 목수, <대도시의 사랑법>의 직장인 등 그녀의 인물들은 모두 자기 일에 몰두하며 삶의 의미를 찾아갑니다. 그녀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일이란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니라, 자기 존재를 증명하는 과정”이라는 철학을 보여줍니다.
그녀의 작품은 일본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번역되어, 현대 일본 문학의 새로운 감성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특히 언어와 인간의 관계를 다루는 섬세한 주제의식은 국제적인 독자층에게도 깊은 공감을 얻고 있습니다.
미우라 시온은 여전히 활발히 활동하며, 장편, 에세이, 비평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작품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그녀의 문학은 ‘조용한 울림’을 가진 문체로, 독자에게 삶의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다시금 일깨워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