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물 분류학자의 삶을 따라가며 과학과 삶의 본질을 탐색한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Why Fish Don't Exist: A Story of Loss, Love, and the Hidden Order of Life)>는 미국의 과학 저널리스트 룰루 밀러(Lulu Miller)가 2020년에 발표한 논픽션 작품으로, 단순한 과학 도서의 틀을 넘어 삶과 존재, 질서와 혼돈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담아낸 독특한 책입니다. 이 책은 생물 분류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을 따라가며, 과학의 본질과 인간의 집착, 삶의 의미를 탐색하는 한편, 저자의 개인적인 삶과 심리적 여정을 교차 서사로 펼쳐냅니다.
이야기는 저자 룰루 밀러가 무질서와 혼란에 대한 깊은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면서 시작됩니다. 어린 시절부터 “세상에는 질서가 있어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살았던 그녀는, 한때 모든 것이 무너져버리는 경험을 하게 되며 삶의 의미를 잃게 됩니다. 그 무렵 그녀는 우연히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 미국의 과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조던은 수천 종의 ‘물고기’를 발견하고 분류하며 과학적 질서를 창조해 낸 인물이었습니다. 룰루는 그의 이야기 속에서 질서를 회복할 수 있는 어떤 단서를 찾고자 합니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단순한 생물학자가 아니라, 새로운 종을 분류하고 이름 붙이는 데 집착했던 인물입니다. 그는 과학을 통해 세계의 혼돈 속에 질서를 부여할 수 있다고 믿었고, 실제로 수많은 어류의 이름과 계통을 정의했습니다. 그러나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으로 인해 그의 수십 년간 모아 온 표본들이 박물관과 함께 무너져 내리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그럼에도 그는 낙담하지 않고, 오히려 무너진 혼돈 속에서 다시 질서를 세워나가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저자는 조던의 집착과 회복력, 그리고 그가 세운 체계에 매료되면서도 점차 그의 어두운 면을 발견하게 됩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는 과학의 이름 아래 우생학(eugenics)과 같은 위험한 이데올로기를 지지했고,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분류하고 차별하는 데 일조했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이 대목은 과학의 중립성에 대한 의문, 그리고 ‘질서’라는 개념이 때로는 얼마나 폭력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지를 드러냅니다.
책의 제목인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과학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표현입니다. 실제로 분류학적 관점에서 ‘물고기’라는 카테고리는 명확한 생물학적 기준이 부족하며, 어류로 묶인 생물들은 서로 유전적으로 상당히 다르다는 점에서 단일한 분류군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이 소개됩니다. 이 사실은 독자에게 생물 분류학의 복잡성과, 우리가 얼마나 인위적인 분류에 의존해 세계를 이해하려 하는지를 되돌아보게 만듭니다.
결국 이 책은 과학자 한 명의 전기를 넘어, 혼돈 속에서 질서를 찾으려는 인간의 본능, 질서에 대한 집착이 때로는 만들어내는 그림자, 그리고 우리가 진정으로 믿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룰루 밀러는 조던을 따라가며 결국 자신만의 방식으로 ‘혼돈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발견하게 되고, 이 여정은 독자에게도 깊은 사유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문학과 과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독창적인 형식으로 주목받은 작품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발표 이후 문학과 과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독창적인 형식과 깊이 있는 내용으로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 책은 전통적인 과학 논픽션이나 전기물의 형식에서 벗어나, 한 인물의 이야기와 저자의 내면 여정이 절묘하게 교차되는 구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는 마치 과학 다큐멘터리와 개인 회고록, 철학 에세이를 결합한 듯한 독특한 경험을 독자에게 제공합니다.
평론가들은 이 책을 두고 “논픽션의 새로운 지평”이라 평가했습니다. 특히 룰루 밀러가 보여주는 이야기 구성력과 서사적 감각은 과학 정보를 단순히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인간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보여주는 데 탁월합니다. 그녀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실존 인물을 통해 과학의 역사와 어두운 유산을 추적하는 동시에, 개인의 삶에서 마주하는 혼돈과 무질서, 상실의 감정을 정직하게 풀어냅니다.
이 책은 단순한 교훈이나 감동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수많은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들에 독자 스스로 사유하도록 돕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왜 세상을 분류하려 하는가?”, “질서는 언제 희망이고, 언제 폭력이 되는가?”, “과학은 어디까지 객관적일 수 있는가?”와 같은 근본적인 물음들이 책 전반에 깔려 있으며, 이는 단순히 과학에 관심 있는 독자뿐 아니라 인문학적 사유를 즐기는 독자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룰루 밀러는 조던이라는 인물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그가 세운 질서의 한계와 위선을 파헤칩니다. 특히 그가 지지했던 우생학적 사고방식은 지금 시대의 윤리와 충돌하며, 과학이 반드시 진보와 도덕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상기시킵니다. 이 부분은 오늘날 과학기술의 급진적인 발전 속에서도 여전히 필요한 비판적 시각을 제시합니다.
또한 이 책은 문장력과 표현의 섬세함으로도 호평을 받았습니다. 룰루 밀러는 과학적 개념을 친절하면서도 시적으로 풀어내며, 독자로 하여금 복잡한 이야기를 마치 소설처럼 흡수하게 만듭니다. 그녀가 묘사하는 풍경, 감정, 실험실의 모습 하나하나는 감각적으로 그려져, 독서는 지식 습득을 넘어서 미학적 체험으로 확장됩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과학을 단순한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삶과 철학의 언어로 바꾸는 데 성공한 책입니다. 이 작품은 인간의 무력함과 회복력, 오류와 가능성, 그리고 무엇보다 ‘질서라는 환상’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정직하게 마주하게 만듭니다. 그 결과, 이 책은 과학을 사랑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삶의 의미를 되묻는 모든 이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깁니다.
룰루 밀러 작가 소개
룰루 밀러(Lulu Miller)는 미국의 과학 저널리스트이자 라디오 프로듀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그녀는 NPR(National Public Radio)의 과학 프로그램 ‘Radiolab’과 ‘Invisibilia’의 공동 진행자이자 프로듀서로 잘 알려져 있으며, 감각적인 스토리텔링으로 과학과 인간의 이야기를 잇는 작업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습니다.
밀러는 과학을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닌 이야기와 감정이 흐르는 세계로 풀어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는 작가입니다. 그녀는 과학의 언어가 종종 건조하고 폐쇄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이를 문학적인 서사와 감성적 접근을 통해 재구성하는 방식을 택합니다. 이러한 접근은 과학 저널리즘을 넘어 문학적 성취로도 평가받고 있으며, 그녀의 첫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 대표적인 성과입니다.
밀러는 과학과 인간의 심리를 연결하는 데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도 솔직하게 글 속에 녹여냅니다. 그녀는 성소수자로서 겪은 정체성의 혼란, 사랑과 상실의 경험, 정신적 위기 등을 작품에 투영함으로써, 과학 이야기를 보다 인간적으로, 또 다층적으로 만들어냅니다. 이런 점에서 그녀의 글은 단순한 과학 설명을 넘어서 삶의 이야기로 확장됩니다.
또한 밀러는 교육과 저널리즘 분야에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으며, 미국 내 여러 대학에서 과학 글쓰기와 오디오 스토리텔링에 대해 강의해왔습니다. 그녀는 ‘과학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철학 아래, 복잡한 과학 이론이나 윤리 문제를 대중의 눈높이에 맞혀 전달하는 방식에 집중합니다. 그 결과, 그녀의 콘텐츠는 다양한 세대와 배경의 청중에게 공감과 인식을 불러일으켜왔습니다.
룰루 밀러의 작업은 과학의 언어를 인간의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이성과 감성, 사실과 해석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며, 현대 사회가 직면한 과학적·윤리적 딜레마를 정직하게 풀어냅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녀의 첫 책이지만, 단 한 권만으로도 밀러는 과학 저널리즘과 문학의 경계를 허문 새로운 목소리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앞으로 그녀가 다룰 주제와 형식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야기를 통해 세계를 이해하려는 모든 독자에게 그녀의 작업은 하나의 나침반이 되어줄 것입니다. 룰루 밀러는 지금 이 시대, 과학과 인간을 잇는 가장 매력적인 이야기꾼 중 한 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