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양 미스터리와 과학의 미래를 예견한 소설
쥘 베른(Jules Verne)의 명작 <해저 2만 리(Vingt mille lieues sous les mers)>는 인류의 탐험 정신과 과학적 상상력을 완벽하게 결합한 모험소설입니다. 1870년에 출간된 이 작품은 해양 미스터리와 과학의 미래를 예견한 이야기로,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 독자들에게 꾸준히 사랑받고 있습니다. 제목의 “2만 리”는 거리의 개념으로, 바닷속을 2만 리 항해한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이 소설은 19세기 말, 전 세계를 공포에 빠뜨린 ‘정체불명의 바다 괴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미국 정부는 이 괴물을 조사하기 위해 탐사선을 보내고, 그곳에 프랑스의 해양학자 피에르 아로낙스, 조수 콩세이유, 그리고 캐나다의 작살수 네드 랜드가 동승합니다. 그러나 이들이 마주한 것은 괴물이 아니라, 놀라운 기술로 만들어진 잠수함 ‘노틸러스호’였습니다. 그리고 그 잠수함의 주인공은 신비로운 인물 네모 선장이었습니다.
아로낙스 일행은 노틸러스호에 억류된 채 세계 바다를 여행하게 됩니다. 이들은 해저의 풍부한 생태계를 탐험하고, 해저 화산, 침몰한 대륙, 남극의 빙하 등 상상조차 어려운 장면들을 경험합니다. 베른은 당시 존재하지 않았던 잠수함의 구조와 운항 원리를 세밀하게 묘사하며, 마치 과학 보고서처럼 사실적으로 서술합니다. 하지만 그 속에는 인간이 자연을 이해하고 지배하려는 욕망, 그리고 문명에 대한 회의가 함께 담겨 있습니다.
네모 선장은 단순한 탐험가가 아니라, 문명으로부터 도망친 비극적 인물로 그려집니다. 그는 인류의 부패와 폭력을 증오하며, 바닷속에서 독립된 세계를 꿈꿉니다. 그러나 그의 고립된 이상향은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감정과 복수심은 결국 그를 파멸로 이끌게 됩니다. 이러한 복합적 인물 묘사는 단순한 모험담을 넘어,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로 이어집니다.
결국 <해저 2만리>는 과학과 환상이 교차하는 여정 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거대한 자연 앞에 작은 존재인지를 깨닫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해저라는 미지의 공간은 인간 정신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 되며, 독자는 노틸러스호의 항해를 따라가며 스스로의 ‘내면의 바다’를 마주하게 됩니다.
인류의 기술 문명이 자연과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지 질문을 던지는 소설
<해저 2만 리>는 19세기 과학소설의 정점으로 평가받으며, 인류가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해양 탐험의 원형을 제시한 작품입니다. 쥘 베른은 과학적 지식을 문학적으로 재해석하여, 단순한 모험소설을 철학적 서사로 끌어올렸습니다. 그는 잠수함의 개념이 실현되기 훨씬 전에 그 구조와 작동 방식을 정확하게 묘사함으로써, 과학 예언자로서의 명성을 얻었습니다.
비평가들은 <해저 2만 리>를 “인류의 기술 문명이 자연과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지는 작품으로 평가합니다. 네모 선장은 한편으로는 이상주의자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문명에 대한 복수심으로 가득한 인물입니다. 그는 자유를 찾아 바다로 도망쳤지만, 그 자유가 결국 자신을 고립시키는 감옥이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베른은 이를 통해 과학이 인간을 해방시킬 수도, 속박시킬 수도 있음을 암시합니다.
문학적 측면에서도 이 작품은 독창적입니다. 베른의 문장은 과학적 설명과 서정적 묘사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룹니다. 그는 해양 생물, 지질학, 물리학적 원리를 상세히 기술하면서도, 그 안에 인간 감정의 서사를 녹여냈습니다. 특히 바다의 묘사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등장합니다. 바다는 신비와 공포,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세계로 그려지며, 인간 문명의 한계를 상징합니다.
또한 <해저 2만 리>는 오늘날 환경문제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네모 선장의 대사는 인간의 탐욕이 자연을 파괴할 것을 경고하는 듯 들립니다. “바다는 모든 것을 정화하지만, 인간의 죄악만은 정화하지 못한다”는 그의 말은 19세기 작품임에도 현대적 울림을 갖습니다.
출간 이후 이 작품은 수많은 언어로 번역되었고, 영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으로 각색되었습니다. 특히 1954년 디즈니 영화 <20,000 Leagues Under the Sea>는 대중에게 네모 선장을 상징적인 인물로 각인시켰습니다. 이처럼 <해저 2만 리>는 단순한 고전이 아니라, 시대를 넘어 계속 새롭게 읽히는 ‘살아 있는 문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근대 공상과학소설의 창시자 중 한 명, 쥘 베른
쥘 베른(Jules Gabriel Verne, 1828~1905)은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근대 공상과학소설(SF)의 창시자 중 한 명으로 평가받습니다. 그는 인류의 상상력과 과학적 예견을 결합하여, 현실과 미래를 잇는 문학의 새로운 장을 열었습니다. 그의 작품들은 단순한 모험담이 아니라, 과학이 인간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탐구한 철학적 소설들입니다.
쥘 베른은 프랑스 항구 도시 낭트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바다에 대한 동경을 품었으며, 항해사나 탐험가를 꿈꿨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뜻에 따라 법학을 공부하기 위해 파리로 이주했고, 그곳에서 문학과 연극에 매료되었습니다. 그는 프랑스의 문학잡지와 극단에서 활동하며 글쓰기 실력을 다졌습니다.
쥘 베른의 인생이 바뀐 것은 출판사 ‘에틀젤(Hetzel)’의 대표 피에르 쥘 에틀젤을 만나면서부터였습니다. 에틀젤은 베른의 재능을 알아보고 과학소설 연재 시리즈 <경이의 여행(Voyages Extraordinaires)>을 기획했습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지구 속 여행>, <80일간의 세계일주>, <달나라 여행>, 그리고 <해저 2만 리> 등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쥘 베른의 작품은 철저한 자료조사와 사실적인 묘사로 유명합니다. 그는 매일 도서관을 찾아 항해학, 지리학, 물리학, 기계공학 등의 자료를 연구하며, 그 지식을 작품 속에 녹였습니다. 이러한 치밀한 준비 덕분에 그의 소설은 ‘공상’이 아닌 ‘예언’에 가까운 현실감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쥘 베른은 단순히 과학의 발전을 찬양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과학이 인간의 욕망과 결합할 때 나타나는 위험을 경고했습니다. 네모 선장, 필리어스 포그, 아로낙스 교수 등 그의 인물들은 모두 과학의 힘을 통해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상징적 존재들입니다.
쥘 베른은 말년에도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가며, “과학은 인간을 한계로 몰아붙이지만, 상상력은 그 한계를 넘어선다”는 신념을 남겼습니다. 그는 1905년 아미앵에서 생을 마감했지만, 그의 문학적 유산은 오늘날까지 이어집니다. <해저 2만리>는 그가 남긴 수많은 작품 중에서도 가장 완벽한 형태의 모험과 사색이 결합된 걸작으로, 인류가 바다라는 미지의 세계를 향해 품었던 영원한 꿈을 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