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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루시카' 스토리 및 안무, 스트라빈스키 음악

by beato1000 2025. 5. 28.

페트루시카 관련 사진

 

 

'페트루시카(Petrushka)'는 러시아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와 안무가 미하일 포킨, 연출가 디아길레프가 함께 창작한 발레 작품으로, 1911년 파리에서 러시아 발레단(Battets Russes)의 공연을 통해 초연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단순한 인형극을 넘어서 인간 존재의 내면을 음악과 춤, 시각 예술로 입체적으로 풀어낸 예술적 실험이자 혁신으로 평가받습니다. 인형이라는 비현실적인 존재를 통해 오히려 더 날카롭게 인간 본연의 고통, 감정, 억압을 다루었으며, 스트라빈스키 특유의 불협화음적 음악 구성과 포킨의 상징적 안무가 완벽하게 결합된 작품입니다. 본 글에서는 '페트루시카'의 서사, 상징, 안무 구조 그리고 음악적 실험성까지, 전방위적으로 작품을 분석합니다.

 

'페트루시카' 스토리

‘페트루시카’는 3막 구성의 발레극으로,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한 인형극처럼 보이지만 그 내면에는 인간의 존재론적 고통, 계급사회에 대한 비판, 자아 분열의 상징이 담겨 있는 깊이 있는 서사를 지닙니다. 무대는 러시아의 겨울 축제 ‘샤로브타이드’를 배경으로, 광장에서는 다양한 인형극과 놀이가 펼쳐지고, 이 가운데 한 마법사가 생명을 불어넣은 세 개의 인형—페트루시카, 발레리나, 무어인—의 이야기로 중심이 이동합니다.
주인공 페트루시카는 어릿광대 복장을 하고 있으며, 가장 인간적인 감정을 가진 인형입니다. 그는 사랑과 질투, 고통과 절망을 느낄 줄 아는 존재로, 이는 단순한 목각 인형이 아니라 고뇌하는 현대인의 상징으로 해석됩니다. 그는 발레리나를 사랑하지만, 그녀는 근육질의 무어인에게 더 끌리고, 이는 사랑의 삼각 구도와 함께 존재의 불평등을 상징합니다. 특히 페트루시카는 자신이 인형이라는 정체성과 인간적인 욕망 사이에서 끊임없이 괴로워합니다. 이는 자아의 분열, 내면적 억압의 상징으로 읽히며, 인간의 자유의지와 정체성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제기합니다. 페트루시카가 갇힌 방은 실제 무대에서 세로로 분할된 사각 프레임 속 공간으로 표현되며, 이는 그의 정신적 억압 상태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로 활용됩니다. 벽에는 “나는 누구인가?”, “왜 나는 느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상징하는 듯한 움직임과 감정 표현이 반복되며, 관객은 그가 단순한 인형 그 이상임을 직감하게 됩니다. 반면 무어인은 욕망과 본능, 육체적 힘의 상징입니다. 페트루시카와 대비되는 캐릭터로, 감정이 결여된 존재이지만 힘과 매력으로 지배적 위치를 점합니다. 그는 발레리나를 소유하려 하고, 갈등의 중심에 서게 됩니다. 발레리나는 아름다움과 우아함의 상징이지만 동시에 자기 결정권이 없는 존재로 묘사되며, 두 남성 인형 사이에서 수동적인 태도를 유지합니다. 그녀는 현대 사회 속 이상화된 여성 이미지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내포합니다. 극의 말미에서 무어인이 페트루시카를 공격해 죽이고, 인형극이 끝난 듯하지만 무대 위에는 페트루시카의 유령이 나타나 관객을 향해 손을 흔듭니다. 이는 ‘죽지 않는 감정’ 혹은 ‘존재의 외침’을 암시하며, 공연은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결말로 마무리됩니다.

 

안무

‘페트루시카’는 미하일 포킨의 안무적 실험이 집약된 대표작으로, 고전 발레의 정형화된 포즈와 동작에서 벗어나 인물의 성격과 심리를 동작으로 표현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특히 포킨은 ‘이야기 중심 발레(narrative ballet)’의 가능성을 증명하면서도, 신체의 표현력 자체로 정서를 전달하는 독립된 언어로서의 무용을 제시했습니다.
페트루시카의 움직임은 마치 관절이 끊어진 인형처럼 불안정하고 단속적입니다. 그는 달리고 구르고, 팔과 다리를 굴절된 형태로 움직이며, 자신의 존재에 대한 불만과 고뇌를 표현합니다. 특히 그의 방 장면에서는 천장을 향해 손을 뻗거나 벽에 머리를 부딪히는 동작이 반복되며, 억압된 존재로서의 고통이 생생하게 드러납니다. 감정의 폭발은 리듬과 함께 확대되며, 안무는 감정의 흐름을 물리적 움직임으로 변환합니다. 무어인은 반대로 낮은 중심축과 넓은 보폭, 반복적이고 강한 리듬감을 통해 지배자적 존재를 상징합니다. 그의 동작은 대체로 대칭적이고 기계적이며, 이는 감정보다는 본능에 가까운 캐릭터로서의 성격을 나타냅니다. 특히 발레리나와의 듀엣에서는 남성적인 힘과 여성적 섬세함의 대비가 극적으로 부각되며, 이는 단순한 사랑 이야기를 넘어 사회적 권력구조를 은유하는 장면으로 읽히기도 합니다. 발레리나의 안무는 부드럽고 선형적인 동작이 중심이며, 팔과 다리의 움직임은 공기처럼 가볍고 부유하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이는 현실에 발 딛지 못하는 존재이자, 이상화된 여성상에 대한 풍자적 묘사로 해석됩니다. 그녀는 사건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스스로 선택하거나 거부하지 못하는 수동적인 인물이며, 이는 작품 전반의 정서적 모순을 강화시킵니다.
전반적으로 ‘페트루시카’의 안무는 서사에 밀착된 ‘심리적 안무’입니다. 동작 하나하나가 정서의 미세한 흐름을 반영하며, 무용수는 연기자이자 감정 전달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고난도의 테크닉보다 표현의 진정성과 정서적 밀도, 캐릭터의 해석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점에서 이 작품은 모던 발레의 출발점으로 평가됩니다.

 

스트라빈스키 음악

‘페트루시카’의 음악은 발레 음악의 개념을 재정의한 시도로 평가받습니다. 스트라빈스키는 이 작품에서 선율 중심의 낭만적 흐름을 탈피하고, 리듬과 색채감 중심의 다층적 구성으로 극의 흐름을 이끌어갑니다. 특히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페트루시카 코드(Petrushka chord)’는 C장조와 F#장조를 동시에 겹친 불협화음으로, 주인공의 내적 불안을 상징하는 대표적 동기입니다.
이 작품은 4개의 장면으로 구성되며, 각 장면마다 독립적인 음악적 색채가 강하게 드러납니다. 첫 장면에서는 축제의 분위기를 반영해 러시아 민속 선율이 혼합된 유쾌하고 빠른 템포의 음악이 이어지고, 갑작스러운 리듬 전환과 다양한 악기 조합이 분위기를 유동적으로 변화시킵니다. 두 번째 장면, 페트루시카의 방에서는 조성이 해체되고 음계가 뒤틀리며, 클라리넷과 피콜로, 하프 등 독특한 악기 조합이 주인공의 고립감을 음악적으로 구현합니다. 무어인의 방에서는 이국적 스케일과 리듬이 등장하며, 북아프리카나 아시아 음악을 연상시키는 요소가 사용됩니다. 이는 스트라빈스키가 이국주의적 환상을 음악적으로 재현한 사례로, 20세기 초 유럽 작곡가들의 오리엔탈리즘 경향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네 번째 장면에서는 각 테마가 재등장하며 혼돈스러운 카오스로 빠져들고, 페트루시카의 죽음과 유령의 재등장을 음악적으로 암시하며 끝맺습니다. 이 모든 음악은 단순한 배경이 아닌, 사건을 직접 주도하고 감정을 증폭시키는 ‘극 중 인물’로 기능합니다. 스트라빈스키는 템포와 박자의 급변, 오케스트레이션의 겹침, 리듬 모티프의 반복 등을 통해 관객에게 무의식적인 정서 반응을 유도하며, 이는 오늘날 영화 음악의 구성과 유사한 방식으로도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결국, ‘페트루시카’의 음악은 발레를 넘어서 현대 음악 전체에 강력한 영향을 남긴 작품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페트루시카’는 단순한 인형극이 아닌, 인간 존재에 대한 심오한 성찰을 발레라는 예술 형식으로 풀어낸 걸작입니다. 이야기와 캐릭터, 안무, 음악이 완벽하게 결합된 이 작품은 오늘날에도 다양한 해석과 무대 실험을 통해 끊임없이 재창조되고 있습니다. 감상자에게는 단순한 공연 이상의 철학적 울림을, 창작자에게는 표현의 무한 가능성을 열어주는 작품입니다. 꼭 한번, 무대에서 직접 ‘페트루시카’를 만나보시기를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