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학적 상상력과 따뜻한 인간애가 조화롭게 어울린 소설
여러분은 SF 작품에 어떤 것을 기대하나요? 우주 전쟁이 벌어지는 스페이스오페라? 아니면 과학 법칙의 엄격함이 지켜지는 하드 SF 소설? 일본과 미국이 섞인 느낌의 미래가 펼쳐지는 사이버펑크 소설 등등, 저는 모두 좋아합니다만, 사변적인 SF도 좋아합니다. 김초엽의 소설은 SF를 통해 우리 일상의 문제들을 들여다보게 합니다. 저는 김초엽의 소설을 읽으며 어슐러 K. 르귄을 떠올렸습니다. SF라는 장치를 통해 우리가 놓치고 지나간 것들, 사회의 구조를 돌아보게 해주는 작품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더욱 와닿는 소설입니다.
김초엽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과학적 상상력과 따뜻한 인간애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소설집입니다. 총 7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으며, 각각의 작품이 독립된 이야기 구조를 지니면서도 공통적으로 ‘이해받지 못한 존재’와 ‘단절된 관계’를 회복하려는 인간의 본질적인 욕망을 탐구합니다. 표제작인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은퇴한 과학자가 식민 행성 개척 사업에서 소외된 인류의 일부를 대표하며, 그 안에서 좌절과 그리움을 겪는 여정을 그립니다. 주인공은 빛보다 느린 속도로 이동해야 하는 한계를 지닌 인간의 기술적 한계 속에서 ‘이별’과 ‘기억’의 의미를 재조명합니다. 김초엽 작가는 SF라는 장르를 단순한 과학적 상상력의 무대로 한정하지 않고, 그 속에서 인간의 정서와 철학적 사유를 섬세하게 녹여냅니다.
다른 단편들 역시 이러한 정서를 일관되게 유지합니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에서는 새로운 행성을 찾아 떠난 인류의 종교적 집착과 구원의 개념을 탐구하며, <감정의 물성>에서는 인간 감정이 물질로 변환된다는 기발한 설정을 통해 ‘감정의 진정성’과 ‘기술의 윤리성’을 묻습니다. 특히 여성 캐릭터들이 각자의 삶 속에서 경험하는 소외감, 사회적 구조 속 불평등, 그리고 존재의 의미를 자각하는 순간들이 섬세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김초엽의 문장은 간결하면서도 시적이며, 과학적 개념을 어려움 없이 풀어내는 동시에 독자의 감성을 자극합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거대한 우주와 미시적인 인간 감정 사이의 간극을 연결하는 작품입니다. SF 장르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라도 이 책을 통해 ‘과학’이 인간의 정체성과 감정을 탐구하는 훌륭한 문학적 도구가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작품의 세계관은 냉철하지만, 그 안에서 인간은 여전히 사랑하고 그리워하며 연결을 갈망합니다. 그 따뜻한 시선이 이 소설집을 단순한 미래소설이 아닌, 현재를 되돌아보게 하는 작품으로 만들어 줍니다.
젠더 감수성과 사회적 다양성 측면에서 새로운 시선을 보여준 SF 작품
김초엽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한국 SF 문학의 새로운 전환점을 제시한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이 책은 과학기술의 발전을 찬양하거나 비판하는 전통적인 SF의 틀을 넘어,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철학적 작품으로 읽힙니다. 김초엽은 과학적 사실을 이야기의 도구로 활용하되, 그 안에서 인간의 감정과 사회적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룹니다. 덕분에 독자는 ‘미래의 인간’이라는 설정 속에서 오히려 ‘현재의 우리’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문체적인 측면에서 김초엽은 간결하면서도 감정의 결을 세밀히 포착하는 능력을 보입니다. 그녀의 문장은 복잡한 과학 개념을 단순화시키지 않으면서도, 독자의 이해를 돕는 따뜻한 서사로 연결합니다. 특히 서정성과 논리성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부분이 인상적입니다. 많은 평론가들은 김초엽의 작품이 “인간적인 SF”의 대표적인 예시라고 평가합니다. 차가운 우주와 기계적 설정 속에서도 인간의 눈물, 외로움, 희망이 살아 숨 쉬기 때문입니다.
비평적으로 볼 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젠더 감수성과 사회적 다양성 측면에서도 의미 있는 시도를 보여줍니다. 여성 중심의 시선으로 구성된 여러 단편들은 기존 SF 문학이 남성 중심적 사고에 갇혀 있던 틀을 벗어나려는 시도로 읽힙니다. 또한 ‘연결’이라는 주제는 단순히 인간과 인간 사이의 정서적 교류를 넘어, 인간과 비인간 존재, 기술과 감정의 경계를 허무는 방식으로 확장됩니다.
독자 반응 역시 긍정적입니다.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SF 장르의 문턱을 낮추었다고 평가하며, 문학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갖춘 작품으로 손꼽습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단순한 미래 예측이 아니라, ‘현재 우리가 무엇을 잃고 있는가’를 되묻는 작품입니다.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섬세한 시선이야말로 이 책이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촉구하는 작가, 김초엽
김초엽 작가는 1993년생으로, 경상북도 포항에서 태어났습니다. 포항공과대학교에서 화학을 전공하며 과학적 사고를 기반으로 한 세계관을 형성하였습니다. 이러한 배경은 그녀의 작품 전반에 녹아 있으며, 과학과 문학이 대립하지 않고 서로를 보완하는 관계로 표현됩니다. 김초엽은 2017년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부문 대상을 수상하면서 문단에 데뷔하였습니다. 이후 발표한 <관내분실>, <스펙트럼>,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등은 모두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그녀의 작품 세계는 ‘과학기술의 발전 속에서 인간은 어디로 향하는가’라는 질문을 중심에 둡니다. 단순히 과학적 상상력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윤리, 관계, 정체성에 미치는 영향을 탐색합니다. 이러한 철학적 깊이 덕분에 김초엽은 ‘철학하는 SF 작가’로 불립니다. 또한 그녀는 사회적 약자, 소수자, 여성, 장애인 등의 목소리를 작품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내며 포용적인 시선을 보여줍니다.
김초엽은 인터뷰에서 “SF는 인간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언어”라고 말합니다. 그녀에게 과학은 차가운 공식이 아니라, 인간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한 도구입니다. 이러한 관점은 작품 전반에 드러나며, 특히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서 가장 아름답게 표현됩니다. 그녀의 작품은 공상적이면서도 현실적이며, 이질적인 존재들 간의 연결을 탐색하는 따뜻한 서사로 이어집니다.
최근에는 장르 문학의 경계를 허물며 에세이, 인터뷰집 등으로 활동 영역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김초엽은 한국 SF 문학의 대표적인 여성 작가로 자리 잡았으며, 독자들에게 “과학은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는 또 다른 방식”이라는 메시지를 꾸준히 전달합니다. 그녀의 작품은 단순한 상상력을 넘어,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촉구하는 문학으로 평가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