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시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지고 사랑받는 신화 판타지 작품
어릴 때 가장 심장을 뛰게 만든 캐릭터는 손오공입니다. 부모님과 극장에 가서 대만에서 만든 <서유기> 영화를 감상했을 때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서유기>는 토리야마 아키라의 <드래곤볼>로, 허영만의 <날아라 슈퍼보드>로 이야기를 변주하면서 여전히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저는 <서유기>의 원작도 너무 좋아하지만, <드래곤볼>이나 <날아라 슈퍼보드>도 정말 좋아했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서유요원전>도 재미있게 읽고 있죠. 서양인의 마음 깊은 곳에 아서왕 신화나 헤라클레스 같은 영웅이 있다면, 동양인의 마음속에는 손오공과 저팔계, 사오정, 유비, 장비, 관우와 같은 신화와 역사 속 영웅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서유기>를 알아도 제대로 책으로 읽어보신 분은 없으실 것 같습니다. 오늘 소개해드리는 <서유기>는 원전을 그대로 번역한 책이라 읽기에 다소 어려우실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한 번 도전해 볼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아니면 문학과지성사에서 청소년용으로 나온 책이 읽기가 좋으니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서유기 (西遊記, Journey to the West)>는 중국 명나라 시대의 작가 오승은(吳承恩, Wu Cheng'en)이 저술한 고전 소설로,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가장 널리 알려지고 사랑받는 신화 판타지 작품 중 하나입니다. 이 소설은 불경을 구하러 천축국(인도)으로 떠나는 삼장법사와 그를 수행하는 제자들의 여정을 중심으로 펼쳐지며, 81난을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인간의 성장, 구도, 깨달음이라는 주제를 상징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이야기는 하늘과 땅, 인간과 신선, 요괴와 부처가 공존하는 신화적 세계를 배경으로 시작됩니다. 주인공인 손오공은 화과산에서 태어난 돌원숭이로, 천재적인 무공과 불사의 능력을 가지고 있으나 교만한 성격 때문에 하늘을 거스르고 옥황상제를 분노케 하여 오행산에 갇히게 됩니다. 이후 서방 정토에서 불경을 구해오라는 관세음보살의 지시에 따라 당나라 고승 삼장법사가 천축국으로 향하게 되고, 손오공은 삼장의 제자가 되어 속죄와 수양의 길에 들어섭니다.
삼장법사의 일행은 손오공 외에도 하늘에서 추방된 천봉원수 저팔계와 사천대강이었던 사오정을 포함한 네 명으로 구성됩니다. 이들은 여정 동안 수많은 요괴와 마법, 시험과 유혹을 마주하게 되며, 각각의 시험은 인간의 본능, 욕망, 교만, 집착 등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손오공은 싸움에서 압도적인 힘을 자랑하지만, 폭력에 의존하지 않고 인내와 지혜로 해결하는 법을 배워갑니다. 삼장법사는 자비와 용서를 실천하며, 인간의 연약함을 안고도 도를 향해 나아가는 진정한 수행자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서유기>는 겉보기에는 흥미로운 판타지 모험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 안에는 불교적 수행의 의미, 도교적 변신술, 유교적 질서와 충효 정신 등 당시 중국 사상의 총체가 녹아 있습니다. 각 등장인물은 하나의 상징이기도 하며, 손오공은 인간의 마음과 욕망, 저팔계는 육체적 본능과 게으름, 사오정은 침묵과 인내, 삼장은 도덕과 정신의 지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이들의 여정은 물리적 이동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그것은 곧 인간 내면의 정화와 해탈을 위한 여정이며, 인간이 지닌 어리석음과 번뇌를 극복해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을 은유적으로 보여줍니다. <서유기>는 그래서 단순한 전설이나 신화가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인생의 비유라 할 수 있습니다.
인간 존재와 사회, 도덕, 종교에 대한 성찰을 담은 작품
<서유기>는 중국 고전문학 4대 기서 중 하나로 꼽히며, 그중에서도 가장 대중적인 사랑을 받은 작품입니다. 특히 동양권에서 손오공이라는 캐릭터는 단순한 소설 속 인물을 넘어 문화적 상징이 되었고, 다양한 해석과 재창작을 통해 오늘날까지도 그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단순한 신화나 전설을 넘어, 인간 존재와 사회, 도덕, 종교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첫 번째로 주목할 점은 작품의 구조적 완성도입니다. <서유기>는 총 100회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회마다 독립적인 에피소드 구조를 띠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서천으로의 여정’이라는 명확한 목표 아래 하나의 일관된 이야기로 완성됩니다. 이 점은 독자에게 지속적인 흥미를 유발하며, 동시에 반복되는 고난과 극복의 형식을 통해 성장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가능하게 합니다.
또한 등장인물의 개성은 매우 뚜렷합니다. 손오공은 통쾌한 무공과 장난기 넘치는 행동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지만, 동시에 내면의 분노와 교만을 극복하며 성장해 나가는 입체적인 인물입니다. 저팔계는 우스꽝스럽고 탐욕스럽지만, 인간적인 매력을 가진 인물로서 현실적인 공감을 자아냅니다. 사오정은 조용하면서도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다하며, 삼장법사는 그들을 이끄는 정신적 중심축으로 기능합니다. 이처럼 각각의 인물이 고유한 성격을 가지면서도, 서로를 보완하며 완성된 팀으로 나아가는 과정은 공동체적 가치와 협력의 중요성을 잘 보여줍니다.
문체와 언어 표현 또한 문학적으로 높은 수준을 자랑합니다. 유려하면서도 풍자적인 문장, 신화와 민담이 절묘하게 결합된 묘사, 각종 전통 설화와 종교적 상징의 인용은 <서유기>를 단순한 대중소설이 아닌 고급 문학으로 끌어올리는 요소입니다. 특히 당대 민중의 언어와 사고방식이 살아 숨 쉬는 표현은, 작품이 지닌 대중성과 시대성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서유기>는 불교, 도교, 유교 사상이 조화롭게 융합된 종합 예술입니다. 삼장은 자비와 해탈의 상징인 불교를, 손오공은 변화와 무위자연의 도교를, 저팔계는 유교적 질서에 대한 비판적 풍자를 각각 상징하며, 이 세 가지가 충돌하고 조화되는 모습은 중국 사상의 정수를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이처럼 복합적인 사상과 철학이 녹아 있는 점은 <서유기>가 수백 년간 고전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입니다.
무엇보다 <서유기>는 ‘변화’를 이야기하는 작품입니다. 단순한 시간적 변화나 공간적 이동이 아니라, 인물 개개인이 내면적으로 변화하고, 결국 궁극적 깨달음에 도달한다는 서사가 이 소설의 핵심입니다. 이는 모든 인간이 살아가면서 마주하게 되는 시행착오와 성장, 고통과 극복의 과정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며, 독자에게 깊은 울림과 성찰을 안겨 줍니다.
중국 고전문학사에 불멸의 고전을 남긴 작가, 오승은
<서유기>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오승은(吳承恩, Wu Cheng'en, 약 1500년경 ~ 1582년)은 중국 명나라 시대의 문인으로, 정확한 생애 기록은 많이 남아 있지 않지만, 뛰어난 문학적 소양과 풍자적인 필체, 종교적 사유에 대한 깊은 통찰을 지닌 작가로 평가받습니다. 그는 강소성 회안 출신으로, 젊은 시절에는 과거 시험을 준비하며 학문을 닦았으나, 관직 생활보다는 문필 활동과 사색에 더 큰 흥미를 느꼈던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승은은 생전에는 크게 이름을 알리지 못했으나, 사후 <서유기>의 저자로 인정받으면서 중국 고전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가 <서유기>를 집필한 정확한 시기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명나라 중기 이후 다양한 구비설화와 민간 전승을 바탕으로 기존의 손오공 이야기를 체계화하고 문학적으로 정립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오승은은 단순히 이야기를 정리한 것이 아니라, 독창적인 서사 구조와 철학적 깊이를 추가함으로써 <서유기>를 단순한 설화 모음에서 위대한 고전으로 승화시켰습니다.
그는 작품을 통해 당대 사회의 부조리, 관료제의 비리, 도덕의 타락 등을 은유적으로 비판했으며, 이는 손오공의 자유로운 정신과 저항적 성격에 투영되어 있습니다. 오승은은 이처럼 신화적 세계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을 잃지 않았으며, 유머와 풍자를 통해 민중의 삶과 생각을 문학에 녹여내는 데 탁월한 재능을 발휘했습니다.
그의 문장은 화려하기보다는 직설적이며, 서사 구조는 복잡하기보다는 명확하고 단순하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오승은은 상상력과 사실성의 경계를 넘나들며, 독자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형식을 빌려 심오한 주제를 전달합니다. 이는 오늘날에도 <서유기>가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동시에, 학문적으로도 깊은 연구 대상이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또한 오승은은 중국 문학 전통 속에서 ‘민중의 이야기꾼’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는 비록 높은 관직에 오르지 못했지만, 그만의 문학 세계를 구축하며 민중의 정서를 대변했고, 이는 그가 남긴 유일한 대작 <서유기>를 통해 영원히 기억되고 있습니다. 현대에 들어서는 그의 삶과 작품에 대한 재조명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으며, <서유기>는 단지 고전 소설이 아니라, 오승은이라는 작가의 철학과 시대 인식이 집약된 문화유산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